"고양이TNR사업, 이대로라면 안락사보다 더 잔인해"

지난 2006년 서울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이곳에 많은 동물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한강맨션 길고양이 억류사건’. 평소 아파트 지하실에 길고양이들이 들끓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운영위원회 쪽에서 지하실 철문을 용접해 고양이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감금한 것이다. 또한 지하실 안에는 덫을 설치해, 잡힌 고양이들을 유기동물보호소에 보내 안락사 시키도록 했다. 이에 동물애호가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평소 이곳의 고양이들을 보살피던 ‘한강맨션 생명사랑 모임’(아래 한생사)은 지하실 철문을 뜯어내 고양이들을 구출했다. 한생사는 한강맨션에 거주하면서 길고양이를 보호하고 관찰하던 주민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이 사건을 통해 해외에서 시행되고 있던 'TNR'이라는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TNR은 길고양이를 포획(Trap)하고 불임수술(Neuter)을 시킨 뒤 왼쪽 귀를 작게 잘라 제자리에 방사(Return)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불임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번식능력이 없어지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꺼려하는 발정시 교미음 등이 줄어들게 된다. 한강맨션의 캣맘들이 TNR을 통해 고양이 개체수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는데 성공하면서 지난 2007년부터는 TNR사업이 용산구로 확대됐다. 이후 서울시 역시 2007년 시범사업을 거쳐 2008년부터 TNR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매년 5천 두 이상의 길고양이들에게 불임수술을 하고 있다.


이처럼 TNR사업은 인간과 길고양이의 새로운 ‘공생’의 방법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TNR사업이 최근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어 동물단체들과 캣맘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담도담 캣맘' 까페의 부매니저인 김수지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양이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고양이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 거의 없다”며 “이런 상태에서 한강맨션의 사례처럼 극단적인 갈등을 해결하고자 급하게 해외의 정책을 받아들이다 보니, 체계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TNR 지침서에 따르면 포획업자들은 고양이를 잡은 뒤 지정된 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최소 수컷 48시간, 암컷 일주일 정도의 회복기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이때 임신 중이거나 6개월 미만, 체중 2.5kg 미만, 병든 고양이와 같이 수술을 견뎌낼 수 없는 체력 조건인 고양이에게는 시행돼서는 안된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런 지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세부적인 지침내용이 없는데다가 해당 구에게 자율적으로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길고양이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나 고양이 애호가조차 TNR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실시되고 있어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김씨는 미숙한 정책의 ‘마루타’로 희생된 고양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김씨는 “암컷 고양이의 불임수술은 전신마취 후 개복하고 난소를 제거해야하는 큰 수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보호기간도 없이 고양이를 수술 후 바로 밖으로 방사하고 있어 많은 길고양이들이 죽고있다”며 분개했다. 고양이도 사람처럼 그들 각자의 특성이 있어, 성별, 나이, 몸무게에 따라 TNR 여부를 세심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이 역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이순임 사무팀장은 “현재 실시되는 TNR 정책은 고양이 개별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불임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새끼 고양이나 병이 든 고양이에게까지 수술이 실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는 3개월밖에 되지 않은 고양이가 불임수술 당할 뻔한 것을 구한 적이 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TNR 사업은 안락사보다 잔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TNR 사업의 결과 개체수가 성공적으로 조절되고 있다는 서울시의 발표와 달리 그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고양이 개체수가 줄면 TNR에 투자하는 예산도 줄어야 하는데, 반대로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개선책은 없을까. 동물보호단체와 캣맘들은 시 당국이 그들과 협조를 통해 체계적으로 TNR 사업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그 지역 길고양이들의 특성과 생태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캣맘의 조언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청회를 열어 여러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논의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요구에 대해 서울시 생활경제과 동물관리팀 방용춘 담당관은 “자치구에서 TNR사업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것은 어려워 그동안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캣맘의 협조를 통해 효과적인 사후관리가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동안 캣맘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항의민원이 워낙 심해서”라고 답했다. 고양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이 ‘무조건 눈앞에서 고양이를 없애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도시 환경 속의 고양이는 하나의 생태계 구성원으로 이들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 하다”며 “공생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진 기자 jhjt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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