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료생협, '살림'의 불을 지피다

 

지난 3월 12일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아래 살림의료생협) 지피기* 대회가 열렸다. 지난 2009년 1월부터 활동했던 여성주의 의료생활협동조합 준비모임은 이날 ‘살림의료생협’을 공식 명칭으로 확정했다. ‘살림’은 여성들이 주로 하는 살림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건강을 살리고 지역 공동체를 살린다는 의미도 담은 중의적인 이름이다. 살림의료생협 최순옥 대표는 “우리는 나와 우리 마을이 함께 건강할 수 있도록,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료생활협동조합(아래 의료생협***)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생협**은 생활 문제를 시장과 자본이 아닌 협동과 관계로 풀어가고자 하는 조직으로, 그 중에서도 의료생협은 건강과 의료에 관련된 문제를 생협의 방식으로 해결해나간다. 의료생협은 수익 증대에만 초점을 맞춘 일반 병·의원에서 과잉 진료를 하거나, 의사가 환자에게 질병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권위적인 태도로 대하는 등 부당한 의료 현실에 맞서 사회적 자본으로 직접 의료 공공성을 추구하는 의료기관을 설립해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의료생협은 치료 중심의 일반 병·의원과 달리 예방과 생활 개선, 지역 보건·복지 사업도 진행한다.


나아가 살림의료생협은 여성주의적 의료를 표방한다.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구조와 낮은 의료의 질, 공공성의 상실 등의 의료 현실도 문제지만, 비장애 남성 중심적, 이성애 중심적 의료 시스템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부분의 약은 70kg의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여성은 약을 오남용하거나 부작용을 일으키기 쉽다. 또한 여성에 대한 의학 연구는 주로 임신과 출산  기능에 집중됐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보살핌 노동에 대한 가치는 저평가되고 여성 환자의 목소리는 경시됐다. 이에 살림의료생협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진료를 넘어 성폭력, 가정폭력 생존 여성, 10대 여성, 비혼 여성, 성소수자, 노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되는 의료를 실천하고자 한다.


실제로 살림의료생협은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유방암캠페인 ‘우리는 유방친구’ , 여성주의 학교, 거리 건강검진 사업 등을 벌여왔다. 또한 밑반찬 소모임, 텃밭 소모임 등 각종 소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2011년에도 ‘찾아가는 건강교육’, ‘주치의 상담사업’ 등 여러 가지 사업들이 계획돼 있다. ‘찾아가는 건강교육’은 ‘팔체질 상담(한의사)’, ‘내가 먹는 콩나물국, 얼마나 짤까?(식생활과 염분, 고혈압 교육)’, ‘나이 따라 달라지는 이 닦는 법 익히기(치과의사)’ 등의 내용으로 이뤄진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엔 조합원들 중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주치의 상담사업’에 나선다.


살림의료생협의 장기적인 목표는 여성주의 주치의제도를 실시하는 신뢰할 수 있는 지역 사회 1차의료기관의 설립이다. 진료과목으로 가정의학과, 한의학과, 치과를 준비하고 있다. 살림의료생협이 만들 의료기관에 참여할 가정의학과 의사 ‘무영’씨는 “환자와 더 잘 소통하는 주치의가 되기 위해 가정의학과를 택했다”고 말했다. 살림의료생협이 만들 의료기관에 참여할 ‘춤추는 4차원 한의사 도희’씨는 “권위적인 기존 의료체계 시스템 대신 살림의료생협이 만들 의료기관에서 환자와 의사가 건강한 관계를 맺는 의료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은평구에 자리 잡은 살림의료생협은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에 거주하거나 출퇴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최 대표는 “나 역시 의료인이 아니라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라며, “의료인이 아니고 여성이 아니라도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면 누구든지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축하 케이크를 자른 조합원 ‘가온’씨는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가장 고민했다”며 “살림의료생협이라는 ‘비빌 언덕’이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지피기 : 살림의료생협에서 ‘발기인’을 순화한 말
**생협 : 생활협동조합의 줄임말
***의료생협 : 의료를 주 목적으로 하는 생활협동조합

 

박소원 기자 parksowon@yonsei.ac.kr
자료사진 살림의료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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