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과 공상이 가득한 신세계 정신병원. 이곳에 형광등을 꾸짖고 자판기를 걱정하며 자기가 싸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 ‘영군’(임수정)이 들어온다.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순’(정지훈)이 새로 온 환자 영군을 유심히 관찰한다.”

어느 날 ‘몸에서 총알이 나오는 소녀’의 꿈을 꾼 박찬욱 감독은 그것에 영감을 받아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었다. 영화를 보면, 공상적이고 순수한 파스텔톤의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자인 영군과 일순이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그야말로 ‘미친’ 연기인 것이다. 특히 영군을 맡은 임수정은 배역을 위해 과감하게 눈썹을 탈색하고 싸이보그가 되었다.

그런데 1972년에도 임수정과 같이 ‘미친’ 연기를 한 사람이 있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8명의 친구와 정신병자를 가장한 채 정신병원에 갔을 때 의사들은 그들이 정상인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쿵’ 소리가 난다면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이상한 병을 꾸며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병원 안에서 그들은 정상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나 그러한 정상적인 부분에 대해서 병원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이 실험을 위해 내용을 기록하자 병원은 과대망상적 정신분열증에서 비롯된 ‘글쓰는 행위’로 치부했다.

이것이 바로 ‘로젠한의 실험’이다. 로젠한은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진단할 때, 환자보다도 ‘정신병원’이라는 상황과 환자의 전적에 더 많이 의존해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실험의 전제를 세웠다. 이 실험으로 로젠한이 낸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인 사람과 미친 사람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병이라는 병명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병원 그 자체가 특별한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 안에서 행동의 의미를 쉽게 오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낸 결론이다. 후자는 일단 정신병으로 명명되면 환자의 다른 모든 특징이 무시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로젠한이 제시한 실험과 같이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가르는 기준은 아직도 모호한 것일까. 남궁기 교수(의과대·정신과학)는 “우리가 감기 걸렸을 때 병원에 가서 증상이 어떤지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며 “우리 정신의도 환자가 말하는, 그리고 환자에게 보이는 현상학적인 기준을 통해 정신질환을 진단한다”고 전했다. 또한 환자를 입원시킨 후에도 지속적으로 상황을 관찰해서 정신병을 진단하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은 많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007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입원한 7만 명 중 약 92%가 강제 입원돼 전세계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2위를 한 독일, 3위를 한 프랑스의 수치보다 대략 7배 높은 값이다. 문제는 그 정상인이면서도 강제적으로 병원에 ‘수감’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상속문제로 다투다 친동생을 정신병원에 가두고,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부모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또 종교문제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경우도 있다.

법학 전문 학술지 『저스티스』에 실린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과 퇴원」의 저자 신권철 대구지방법원 판사 또한 “지난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1980년대와 90년대 초 정신질환자의 시설 강제 입원과 인권침해 등을 계기로 제정됐으나, 시행 10여 년이 지난 지금 입원환자의 증가와 강제 입원에 대한 행정적 통제시스템의 형식화 등으로 인해 이 법은 사실상 입원을 승인하는 절차로 전락했다”고 언급했다.

물론 현대 정신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제 30여년 전 로젠한의 실험과 같이 ‘미친’ 연기를 해도 비정상인이라고 판정받는 경우는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신병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강제입원를 시키고, 강제입원를 막자는 취지의 정신보건법 또한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 에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병이라고 진단받은 정상인들도 타인의 손에 의해 강제 입원되고 있을지 모른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