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윤리’가 제시하는 인간 삶의 기준을 엿보다

불치병에 걸린 어린 딸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딸의 끔찍한 고통을 보며 의사에게 진통제를 처방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의사는 진통제를 투여하면 딸이 빠르게 죽어갈 것이라며 거절한다. 그러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딸의 모습을 보던 아버지는, 결국 차 안에 딸을 태우고 가스를 채워 죽게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부딪치는 ‘선택’의 순간은 무수히 많다. 이렇게 극단적인 예뿐만 아니라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부터 차 없는 횡단보도에서 빨간 신호에 건널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까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상황은 항상 마음 속 혹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은 일정한 ‘기준’을 적용시킨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기준을 사용해 선택을 내릴까? 브루클린대학 철학과 폴 테일러 교수는 그의 저서 『윤리학의 기본원리』에서 “인간은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이건, 혹은 그 관습적 도덕을 배척한 후 스스로 선택하건 어떠한 규칙이나 표준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사회적 통념 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혹은 자기 스스로의 이성에 의한 판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개인 속에 내재된 일정한 규칙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규범윤리’는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도덕적 기준을 설정하는 윤리 체계다. 테일러 교수에 의하면 현대 도덕철학에서 가장 널리 논의되고 변호되는 두 가지 규범윤리로는 ‘형식주의’과 ‘공리주의’가 있다. 이 두 체계는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또는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유를 제시한다. 여기서 형식주의는 의무론적 윤리체계이며, 공리주의 목적론적 윤리체계의 일반적 유형이라 말할 수 있다.

실제 상황에서 이 체계들은 어떻게 적용될까? 아픈 딸을 둔 아버지의 예에서, 형식주의자들은 ‘아무리 딸의 고통이 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을 억지로 앗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형식주의 하에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인’이 절대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대표적 형식주의자인 칸트는 이러한 선택의 기준을 ‘보편적 규칙’으로 보았다.

반면 공리주의자들은 아픈 딸을 둔 아버지의 예에서 ‘어차피 결과적으로 죽게 될 딸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면, 그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리주의는 ‘어느 행위가 유용하다면 그 행위는 옳다’는 윤리 체계다. 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지의 여부는 그 행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결정함으로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대학교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강명신 연구교수(보건대학원·보건의료법윤리학)는 “만 명의 사람들이 있으면 만 가지의 삶의 기준이 있을 것만 같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선택을 하는 기준은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고 말했다. 규범윤리가 제시하는 철학적 윤리체계들 속에 우리가 선택을 하는 기준들이 대부분 담겨있다는 이야기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들에서 자신이 형식주의적 선택을 하고 사는지, 혹은 공리주의적 선택을 하고 사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그 선택의 기준은 과연 정당한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강 교수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명언을 제시했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우리가 선택할 때 어떤 기준에 의해서 하는지 생각해보고 반성하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선택을 ‘주체적 선택’으로 만들어 줄 유일한 길이다.

김유진 기자  lcholic@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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