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해석에 있어서 나오는 갈등의 의미를 조명하다

“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국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

지난 2010년 방영한 드라마 『대물』에서 하도야 검사 역의 권상우가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외친 윤리강령이다. 드라마에서 권상우는 누구보다도 열정이 넘쳤고,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열혈 검사’였지만 정치적 권력 앞에서 무너진 법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언제나 가슴에 품어왔던 정의에 대한 소신을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고백한다.

드라마가 방영이 된 후 “현실 법조계에도 이런 인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바람이 게시판을 쇄도하면서, 위 장면이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꼽혔다. 이런 열렬한 시청자들의 지지에는 물론 권상우의 좋은 연기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캐릭터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어쩌면 그 이면에 어떤 소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난 2007년 고려대 행정학과 박종민 교수는 한국 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국가기구에 대한 신뢰도’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법원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1996년 70%였으나 2003년에는 58%로, 2007년에는 48%로 내려갔다. 국민의 절반이 법원에 대해서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낮은 신뢰도에 대해 이현규 변호사는 “법관의 개인적인 가치 판단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경우가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법관은 법률에 근거해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그 법률을 해석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법 규정의 문장이나 단어의 의미에만 한정해서 법률을 해석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체적인 문맥 속에서 법률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전체적인 문맥이라 하면, 법률 제정의 목적, 법 적용의 결과와 합리성 등을 고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자는 전자의 경우보다 법률의 해석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법률 해석의 흐름은 후자를 많이 따라가고 있다. 즉, 법관의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법률 해석이 다양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같은 법률을 두고 서로 다른 판결이 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양도소득세*의 과세표준을 두고 벌어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공방전이다. 지난 1982년 양도소득세의 과세표준은 실질거래가액**이 아닌 기준시가***로 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3억원에 취득한 토지를 10년 후에 10억원에 양도한다고 하자. 여기에서 3억원과 10억원은 실질거래가액이다. 만약에 이 토지의 기준시가가 각각 1억, 10년 후에 5억이라면 이 법의 규정에 따라 양도소득세는 양도할 때의 기준거래가인 5억에서 10년 전 토지를 취득할 때의 1억을 뺀 양도차액 4억에서 세금을 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조항이 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는 그 자산의 실질거래가액에 의한다’는 것이다.

이 예외조항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실질거래가액이 기준시가에도 못 미쳐 양도차익은 적은데도 과중한 납세의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나온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달랐다. 대법원은 납세자에게 유리한 경우만을 한정해 대통령령에 위임했다는 해석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봤다. 오히려, 납세자가 단기간에 투기거래나 위법거래를 통해 실질거래가액이 높아 큰 소득을 본 경우를 대비해 만든 예외조항이라고 보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번복했다. 여기에 헌법재판소도 질세라, 대법원의 판결을 위헌이라고 판정해 버린다.

사실 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은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다. 예외조항이 없다면 실질거래가액이 기준시가보다 낮을 경우, 납세자는 피해를 볼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납세자가 큰 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자의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갈등에 대해 “두 기관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 제도적 한계와 각자의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같은 법률을 두 기관이 다르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이 생긴다. 당시 국민들은 두 기관의 엇갈린 입장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혹자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라는 고래싸움에 국민들의 등이 터졌다고 본다. 이 변호사는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여 법해석의 통일을 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물론 현재는 법관이 법률의 문장, 단어 하나하나에 얽매여 법률해석을 하는데 구속되는 일은 지양되고 있다. 이제 법률의 해석은 책에 쓰여진 2차원적인 법률 문구를 살아있는 3차원으로 만드는 작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는 법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는 제도와 대화를 통해 조정되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법에 대한 법조계의 갈등에 신뢰를 잃기도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사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절반에도 못 미치듯이 말이다. 그러나 법조계의 갈등이 없다면 더 나은 법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판관의 구성비율을 다양하게 하고, 삼심제를 두어 법에 대한 다양한 이견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다양성에서 오는 시끄러운 갈등은 획일성에서 오는 침묵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양도소득세: 토지, 건물 따위를 유상으로 양도하여 얻은 소득에 대하여 부과하는 조세
**실질소득가액: 실제 시장가
***기준시가: 정부가 정한 가액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