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연극 특수효과의 세계

 

 

연극에서도 영화 『인셉션』과 같은 특수효과를 낼 수 있을까? 영상매체의 특수효과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계속 진화해나가고 있지만, 현실공간이라는 제약을 받는 연극은 그 특성상 영화와 같은 특수효과를 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연극계도 그 나름의 특수효과를 통해 화려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젠 연극무대에서도 ‘특수효과’를 본다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의 무대는 겉으로 보기에 특수효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단순히 무대의 배경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세탁기가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세탁기 안에 배우들이 들어가는 순간, 세탁기는 눈앞의 무대를 환상의 공간으로 바꾸는 매개체가 된다. 물이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원형의 세탁기 안에서 배우들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면은 관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뿐 아니라 검은 옷을 입고 들어갔던 배우들은 좁은 세탁기 속에서 세탁돼, 물에 젖은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의 연출가 권호성씨는 이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피했다. 권씨는 “이 장면에 대한 비밀은 디자이너의 지적 재산권이기도 하지만 또 알고 보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에 연극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어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특수효과에만 관객의 눈길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장면은 ‘때 많고 얼룩진 사람들이 세탁기에 들어가서 새하얀 빨래로 거듭 난다’는 연극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권씨는 “단지 연극의 볼거리를 늘리기 위해 특수효과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작품의 규모에 비해 너무 거대한 특수효과나 장치는 오히려 관객들의 몰입에 방해되는 경우가 많으니 작품의 주제를 특수효과와 잘 결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극 『그자식 사랑했네』에서도 비가 오고 기차가 떠나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OHP(Over Head Projector)*로 칠판에 비춰 추억을 돌이켜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분무기로 비를 연출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일부러 보여주면서 재미를 추구하기도 한다. 연극 『그자식 사랑했네』의 원작자 겸 연출가인 추민주씨는 “특수효과는 연극 공연이 인생의 어떤 특별한 순간, 장소를 다루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최근엔 비가 종일 내리는 공연과 같이 밀가루, 눈, 그림자 등 특수효과 그 자체가 모티프가 되는 공연도 많이 생기고 있고 연극 역시 특수효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그러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고난의 인생까지 돌아가게 하는 회전 무대

무대 특수효과라고 해서 꼭 판타지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연극『특급호텔』에서는 원형 무대라는 장점을 살려 360도 회전하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종군위안부가 살아가는 험난한 인생을 뜻하는 회전 무대는 무대를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길이나 언덕, 동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일본군 역의 배우들이 직접 무대를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 ‘인생’이라는 하나의 길이 휘둘려지는 위안부들의 삶이 더욱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로써 위안부 막사를 뜻했던 ‘특급호텔(Hotel Splendid)’의 비극성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다. 극단 ‘초인’의 기획팀장 김연정씨는 “이러한 무대의 전환을 통해 단선적인 무대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상황의 묘사와 극적 전개가 두드러지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효과에 담긴 배우와 연출자의 ‘한 땀 한 땀’

대체적으로 특수효과는 극의 분위기를 살리고 관객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 내는데, 그것을 위해 극단이 들이는 노력은 만만치 않다. 김씨는 “공연을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개런티를 낮추고서라도 멋진 무대를 만들고자 하는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처럼 화려한 특수효과와 편집 기술을 이용할 수는 없지만 연극의 특수효과는 배우들의 노력과 연기가 있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다.
“연극은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녹화나 편집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라이브 예술”이라며 “화려한 영상 매체 시대에서 연극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진정성과 고유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연극이란 생각이 든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연극은 그렇게 관객 바로 앞의 무대에서 연출해야한다는 불리함을 가지고도 연극만의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자, 이번 주말에는 영화보다 더 색다른 연극의 ‘특수효과’로 눈을 즐겁게 해보는 건 어떨지?

*OHP: 스크린 위에 영상을 확대 투영할 수 있는 기계

 

 


남혜윤 기자 elly@yonsei.ac.kr
자료사진  극단 모시는사람들
극단 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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