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2일. 최아무개씨는 그날도 피자배달을 위해 가게를 출발했다. ㅎ 대학교 4학년인 그는 부족한 등록금을 메우기 위해 5개월 전부터 주말마다 피자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 잔뜩 밀린 주문과 빨리 배달해달라는 고객들의 아우성, 본사의 30분 배달 지침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그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급히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미처 마주 오는 택시를 발견하지 못했고 끝내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최씨의 사망 사건 발생 후,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이 여기저기서 촉발됐다. 특히 몇몇 유명 피자배달업체에서 시행하는 ‘30분 배달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30분 배달제는 30분 내로 피자를 배달하지 못할 경우 피자가격을 할인하거나 받지 않는 제도다. 이는 피자배달원들이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질주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왔다.

네티즌 3천여 명과 여러 유명인사의 지지에 힘입어 지난 2월 8일, ‘청년유니온’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역삼동 ‘도미노피자’ 본사 앞에서 30분 배달제의 폐지와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지침 마련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도미노 피자의 30분 배달제도는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는 1993년 폐지됐으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도, 브라질 등지에서 여전히 유지돼 왔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도미노피자 본점에 △30분 배달제와 유사지침 삭제 △배달원 안전 확보 △배달원의 안전장구 지급 등의 사항으로 이뤄진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성과로 ‘피자헛’에서는 지난 2월 1일 30분 배달제도를 폐지했다. 지난 2월 13일 또 다른 피자배달원이 목숨을 잃자 도미노피자 역시 20년간 유지해 오던 30분 배달제 폐지를 선언했다.

우리대학교를 비롯한 신촌지역은 교통의 요지로 유동인구와 교통량이 많다.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의 이진원 경사는 “복잡한 신촌지역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는 항상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우리대학교 정문을 지키는 경비 ㄱ씨는 “학교 앞에서 배달오토바이가 신호가 바뀌기 전 미리 출발하는 바람에 자동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몇 번이나 목격했다”며 “다친 사람이 대부분 어린 학생이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대학교의 경우 배달오토바이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 학내에서도 보행자들이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신촌 지역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ㅇ씨 역시 자동차와 부딪혀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앳된 얼굴의 그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2달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ㅇ씨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30분 배달제를 내걸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어느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배달이 이뤄진다. 그는 “빨리 갔다와야한다는 압박감에 오토바이를 급히 몰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은 지난 2월 1일 폐지된 피자헛의 ‘챔스 체크’를 떠올리게 한다. ‘챔스’는 내부 인사평가항목으로, 30분 내에 배달을 하지 못한 배달원은 점수를 감점 당해 인사에 불이익을 받는다. 실제로 피자헛에서는 작년에만 최아무개씨를 비롯해 3명의 배달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적지 않은 업체가 내부적으로 30분 배달제를 조장한다. 따라서 최근 피자헛과 도미노 피자에서 이뤄진 30분 배달제 폐지가 모든 배달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배달원들의 안전교육과 안전장비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달 노동자의 근로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안전교육의 경우 일부업체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안전교육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피자헛의 경우, 보험사에서 이뤄지는 안전교육이 상사를 거쳐 다시 직원에게 실시되기 때문에 배달원들이 직접 교육을 받을 수는 없다. ㅇ씨가 근무하는 회사의 안전교육 역시 단순히 동영상을 보여주는 등에 그친다. 이 교육에 대해 ㅇ씨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바쁜 시간에는 음식을 만드는 아르바이트생까지 배달 아르바이트에 동원되기 때문에 안전교육을 받지 않은 채 배달오토바이를 모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피자헛노동조합 김용원 위원장은 “영세한 사업장의 경우 적은 인원이 배달을 하다 보니 주문이 폭주할 경우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어, 적정인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비정규직인 배달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피자헛 이외의 다른 피자업체에도 노동조합이 조직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의 오토바이 사고 산업재해자는 7천81명에 달하며 그 숫자는 증가세에 있다. ‘30분 배달제 폐지’로 인해 일어났던 배달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식어버린다면, 앞으로도 배달 오토바이 위에서 목숨을 잃는 청년들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정혜진 기자 jhjtoki@yonsei.ac.kr
사진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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