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동안 한국의 멋 지켜온 전통인형, 닥종이 인형과 꼭두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수십만 개 씩 찍혀 나오는 인형이 있는가하면 몇 개월 동안 장인의 손때를 탄 끝에 하나의 인형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닥종이 인형과 꼭두와 같은 전통인형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만드는 과정은 느리고 불편할 수 있지만 이들은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이 담긴 ‘혼’을 가지고 있다.

닥종이 인형은 닥나무로 만든 우리 고유의 한지를 재료로 한다. 닥종이는 질기면서도 부드럽고 통풍과 보온성이 뛰어나며, 특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닥종이의 품질이 더욱 좋다. 이러한 닥종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인형의 품질도 높고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도 묻어나오게 된다. 닥종이인형 공예가 류귀화씨는 닥종이를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같이 느끼는 따스함을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라고 정의했다.

닥종이로 풍물놀이, 전통혼례, 씨름 등 우리 전통문화를 표현해낸 인형의 모습은 순수한 동심과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닥종이 인형은 단순히 전통적인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삶을 보여준다. 류씨는 “닥종이 인형은 얼굴표정, 몸짓, 옷깃 속에 저마다의 사연과 정겨운 표정을 담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한다”고 말했다.

닥종이 인형을 만드는 일은 그 아름다움만큼 시간과 노력, 인내를 필요로 한다. 우선 피복전선이나 철사를 이용해 뼈대를 만든 후 머리 형태를 잡아야한다. 그 후 입, 코, 눈, 귀 등의 순서로 종이를 한 장, 한 장 찢어 밀가루 풀을 이용해 붙이는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풀이 덜 말랐을 때 계속 붙이면 곰팡이가 슬기 때문에 풀을 붙이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그 위에 또 한 장 붙이고 기다리는 인고의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따라서 보통 작품 한 개를 만드는데 2~3개월이 걸린다. 닥종이인형 공예가 전진숙씨는 “닥종이 인형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인내와 애정이 많이 필요하다”며 “살아있는 사람을 만든다는 마음과 자식을 살찌우는 마음으로 인형을 만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통인형으로는 ‘꼭두’라는 나무 조각상이 있다. 꼭두는 장난감, 생활용품, 민속신앙의 표현물 등 그 쓰임이 다양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은 상여의 장식물이었다. 꼭두는 제일 이른 시간이나 가장 윗부분을 가리키는 순우리말로 ‘다른 곳으로 가는 경계’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꼭두인형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경계의 역할을 하는 상여의 장식물로 많이 쓰였던 것이다. 꼭두가 나무로만 만들어진 것도 상여와 함께 불에 잘 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꼭두박물관 전시팀 김향빈 연구원은 “상여에 쓰인 꼭두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은 꼭두가 그 당시의 생활상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꼭두는 그 제작법이 문헌과 같은 글을 통해 내려오기보다 민중에 의해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꼭두는 그 마을만의 풍습이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고,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꼭두는 한 개도 같은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형상은 봉황, 용, 사람이다. 김 연구원은 “봉황과 용은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에 꼭두에 많이 쓰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표적 꼭두인 인물상 꼭두는 길을 안내하고, 시중을 들거나, 영혼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꼭두는 민중과 가까운 것으로, 상여에 쓰인 꼭두는 양반이나 왕실의 것보다 민중이 것이 더욱 화려했다”고 전했다. 양반들의 경우 유교의식에 따라 간소화된 형태의 상여꼭두를 사용한 데 비해 민중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꼭두를 사용해 자유로움에 대한 열망을 표출한 것이다. 화려한 꼭두로 장식된 상여를 만들기 위해 상여계를 들 정도로 민중들은 꼭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가장 활발하게 만들어지던 꼭두는 근대에 오면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꼭두는 근근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5년 전 유일한 꼭두 장인이 별세하고서는 명맥을 이을 사람이 없어 사실상 대가 끊긴 상태다.  현재 남은 대부분의 꼭두는 동숭동에 위치한 꼭두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이곳에서는 상설전시를 하면서 어린이들, 외국인,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전통을 이을 사람은 없어도 남아있는 꼭두를 알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인형은 현대적 관점에서는 뒤처져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한국의 멋’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다. 연초를 맞이해 가족에게 한국의 정서가 담긴 우리의 전통 인형을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남혜윤, 박미래 기자 elly@yonsei.ac.kr
자료사진 전진숙 닥종이 인형 연구소
동숭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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