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에 도로는 없어도 페이스북은 있군요.”

영화「소셜 네트워크」의 극중 대사다. 하버드대에 다니는 ‘마크 주커버크’는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화가 난 나머지 기숙사 여학생들의 사진을 해킹해 ‘이상형 월드컵’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계기가 돼 개인계정 하나만 만들면 누구와도 인맥을 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페이스북’을 탄생시킨다. 이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파만파로 퍼져 예일대, 콜롬비아대, 스탠포드대에서도 유행하게 됐고, 결국에는 전미 대학생들이 가장 열광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파장은 영화 밖에서도 퍼지고 있다. 현재 페이스북에 가입한 회원수만 따져도 중국, 인도의 인구수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초국가 규모의 네트워크를 가진 페이스북 안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웹 상에서는 다양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아진다. 간단하게는 우수 블로거를 선정하는 방법부터 메인으로 나갈 뉴스 기사나 아고라의 댓글 노출 정책까지, 쉽게 결정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월드 와이드 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는 “우리가 웹에서 보이는 모습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바로 웹 사이언스의 서막을 알리는 말이다.

웹 사이언스는 앞선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통해 접근하려는 시도다. 카이스트대 문화기술대학원 한상기 교수는 “기존의 웹 1.0은 ‘공학적 연구 개발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의 웹 2.0은 ‘과학적 연구 개발의 대상’이다.”고 말했다. 과학의 경우 현상을 설명하고 다음에 나타날 현상을 예측하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라면, 공학은 그러한 과학이 만든 이론을 이용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인공물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웹은 이제 단순히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인공물’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현상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공간’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웹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은 웹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등의 다양한 학문들로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로 확장됐다. 기존에 ‘공학’의 전유물이었던 웹에 인문·사회학적인 색깔이 입혀지는 것이다. 한 예로 스탠포드대 심리학과 B.J. 포그 교수는 지난 2008년 봄학기에 페이스북의 심리학 강좌를 열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이면에 숨겨진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이 강좌의 9주차에 초빙된 켄사스주립대 문화인류학과 미셸 웨스치 교수는 “2년 간의 연구를 통해 문자가 없는 파푸아 뉴기니 부족의 행동패턴이 페이스북의 그것과 비슷하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교수는 파푸아 뉴기니 부족 안에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의 평에 의해 정하는 것과 같이 페이스북에서도 친구나 연인처럼 서로가 만든 관계로써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 사례 모두 문자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구어 혹은 대화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학문의 융합사례는 그동안 많이 접해봤다. 지난 11월 8일 소셜 웹 워크샵에 참여했던 카이스트대 전산학과 문수복 교수는 “웹 사이언스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인지과학처럼 융합학문의 분야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인지과학에서는 인간의 인지적 현상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전산학, 심리학, 언어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동원한다. 웹 사이언스 역시 웹 상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학문을 동원하는데 그 스펙트럼이 넓어 이 인지과학 분야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문 교수는 “이제는 사람들이 써야하는 데이터베이스의 디자인을 하는데도 인지과학이 쓰인다”며 “사용자의 행동패턴을 분석해서 나온 모델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접근하고 이용하게 된다”고 전했다.

사실 웹 사이언스라는 분야는 다루는 범위가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 한 교수 역시 “웹 사이언스가 학문으로 정착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웹 사이언스에 대한 관심 속에는 새로운 학문과 함께 올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지난 2008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첫 웹 사이언스 컨퍼런스는 그런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 컨퍼런스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1천 편 이상의 논문을 내는 등 활발한 논의가 오고갔다. 아직 학문화가  진행 중이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웹 사이언스, 고대 문명이 꽃폈던 그리스 아테네처럼 과연 우리도 웹의 세계가 꽃피울 또 다른 문명을 볼 수 있을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 이용자들은 SNS를 통해 인맥을 새롭게 쌓거나, 기존 인맥과의 관계를 강화시킨다.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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