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에서 조형학까지, 한 자리에 모이다

하얀 소복을 입고 한 줄로 줄지어선 사람들. 그들은 눈앞의 흰 그릇에 담긴 검붉은 액체를 마신다. 그 순간 검은 옷으로 온 몸을 가린 사내들이 머리 뒤에서 둔기로 그들을 강하게 내리치고, 하나 둘 고꾸라지기 시작한다. 지난 6월 MBC 드라마 「김수로」에서 최초로 재현한 ‘순장’ 장면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 그를 수행하던 산 사람을 함께 묻던 풍습인 이 순장 장면에서 구야국 귀족이 죽음에 따라 함께 죽게 된 어린 여종은 “살고싶다, 살려줘”라며 울부짖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런데 바로 드라마처럼 이 어린 여종의 유골이 발견됐다. 경남 창녕 송현동 고분군 중 15호분에서 순장자 인골 4구가 발견출토된 것이다. 이들 4명 중 한 소녀의 뼈는 거의 온전히 남아있어 언론에서 앞다퉈 보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결정이었다. 연구소는 박물관에 인골을 전시하는 대신 이 소녀의 생전 모습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최초의 인골 복원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총 책임을 맡았던 이성준 학예연구사는 “도굴꾼이 다 훑고 지나간 무덤에서도 그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인골을 보는 순간, 그 안에서 사람을 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인골은 출토 지명을 따라‘송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이 송현이 복원작업은 무덤 밖으로 인골을 내오는데서 시작됐다. 연구소는 카톨릭대 응용해부연구소(아래 응용해부연구소)와 공동으로 인골 수습에 착수했고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연구를 통해 이 인골들이 420~560년 시기의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가야시대의 인물들로 추정했다. 다음으로 진행된 것은 이 인골들의 신원확인이다. 법치의·의인류학에 따르면 송현이의 경우, 아직 사랑니가 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팔다리뼈에서 성장판이 열린 것으로 보아, 15~17세의 여자아이였다. 또한 송현이는 영양결핍과 무기질이 불충분한 식사로 빈혈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종아리뼈를 보면 무릎을 반복적으로 꿇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송현이는 주인집에 시중을 드는 아이가 아니었나하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신원확인 작업이 끝나고 송현이는 물리적 복원 작업과정에 들어갔다. 발굴된 인골은 컴퓨터단층촬영(CT)과 3D 재구성을 통해 복제됐고 조립된 복제뼈 위에는 근육, 피부 등이 입혀졌다. 이 과정에는 조각가이자 조형해부학자인 김병하 씨가 참여했다. 김씨는 송현이의 얼굴을 만들 때 얼굴 근육 등이 인상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해부학 교수들과 함께 응용해부연구소에서 분석한 한국인의 피부두께와 얼굴근육의 표준 데이터를 활용해 송현이의 얼굴을 예측했다. 그러나 과학적 계측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송현이의 객관적인 모습에 다가섰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김씨는 “응용해부연구소에서 제안한 얼굴 데이터를 받았을 때도 조형학적으로 뼈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볼살이 계측돼 왔다”며 “송현이의 사회적 지위나 식생활 등의 고고학적 자료를 고려했을 때도 말이 안되는 부분이어서 논의 끝에 수정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1천500년 전의 송현이가 부활한 것은 다양한 학문들의 융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송현이 복원 프로젝트에서 이 학예연구사는 모든 학문들을 한 자리로 모으기 위해 인골의 신원확인을 해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교수님들을 초빙하고, 인골의 연대를 추정할 고DNA 연구진들과의 협력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인체복원모형에서는 앞서 언급한 김씨와 영화 『박쥐』,『마더』에서 특수분장을 맡았던 CELL팀이 동원됐다. 이 학예연구사는 “학문적 순수함을 가지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2년간 모두가 노력했다”고 말했다.

송현이는 이제 ‘한국의 투탕카멘’이라고 불린다. 투탕카멘을 재현한 것과 같이 이제 우리나라도 인골복원기술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수식어다. 응용해부연구소의 이우영 교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복원을 위한 자료수집 및 관리 능력, 조형학자의 복원 능력은 외국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렇게 정식으로 다양한 학문들이 협력한 것은 처음이기에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단순히 발견된 인골을 수장고에 넣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여러 학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대껴 살아 숨쉬는 ‘송현이’를 부활시켰다. 이번 복원을 통해 송현이가 1천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부활한 데서 우리는 새로운 학문의 가능성을 엿본다.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자료사진 국립가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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