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 노동자 지위 인정 안돼... 노사 여전히 대립

잠실 운동장에서 연고전이 있었던 지난 9월 10일, 대학로 재능교육(아래 회사) 본사 앞 길가에선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아래 노조)의 부당해고자 전원 복직과 임금 및 단체 협약(아래 임단협) 원상회복을 위한 결의대회가 있었다. 잠실에 아카라카의 신나는 함성이 울려 퍼진 동안 대학로엔 비정규직을 철폐하라는 비장한 구호가 울려 퍼졌다. 같은 날 같은 서울 하늘에서 내린 폭우를 뚫은 대조적인 두 소리였다.


 잠실을 가득 메운 소리는 일 년에 하루 이틀 외치는 소리지만 대학로를 가득 메운 소리는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천 일째 외치는 소리다. 지난 9월 15일은 노조가 투쟁을 시작한 지 딱 천 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날은 총력 결의대회가 열렸다. 9월 10일 집회와 달리 여러 투쟁사업장 노조가 연대해 집회 참가자가 백 명을 넘었다. 천 일째 집회를 열며 노조의 유명자 지부장은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는 용역업체 직원들을 시켜 노조가 농성장에 친 천막을 빼앗았으며 본사 앞에 화단을 조성해 노조를 농성장에서 밀어냈다. 지금 까지도 고용된 용역 업체 직원들의 모욕과 폭력, 성추행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천 일이나 하게 될 줄 몰랐다” 유 지부장이 말했다. 처음 시작은 단순한 임금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5월 회사와 당시 노조 집행부가 체결한 임단협에 포함된 임금 삭감안이 투쟁의 발단이 됐다. 노조 일반 조합원들은 사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임단협에 반대해 새로운 노조 집행부와 같은 해 12월 21일부터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투쟁이 햇수로 3년을 맞는 동안 노사 간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됐다. 회사는 폭행, 업무방해, 재물손괴 등의 이유로 노조 집행부 9명을 해고하고 이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통해 노조의 본사 접근을 차단했다. 뿐만 아니라 노조와 더 이상 임단협도 하지 않는다. 노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는 지난 2003년 6월 대법원이 ‘학습지 교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지금의 노조는 불법 노조라고 주장한다.


 “세상에 불법 노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 지부장이 반박했다. 노조 결성은 노동자의 고유한 권리다. 법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조가 아닌 것이 아니다. 법외 노조일 뿐이다. 게다가 투쟁 이전에 노조는 해마다 사측과 임단협도 체결해왔다. 노조는 회사에 임금 문제 해결에서 나아가 부당해고자 전원 복직과 임단협 원상회복을 요구한다.


  하지만 노사간의 대립이 해결되려면 근본적으로 학습지 교사가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아야 한다. 현재 학습지 교사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회사의 통제 아래 일하면서도 사업자 등록을 하고 회사와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로서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노동자다. 실제로는 1년짜리 계약직 노동자로 상시 해고 위협을 받으면서도 명목상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며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출산휴직, 육아휴직, 생리휴가는 꿈도 꾸지 못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직수 정책부장은 “특수형태근로는 IMF 이후 실적제,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불안정한 노동의 극단적 형태”라며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정부가 나서서 사업자들이 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규제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25일 노조가 길 위에서 맞는 여섯 번째 명절에 기자가 재능 노조의 노상농성장을 다시 찾았다. 집회 참가자들로 가득 찼던 9월 15일 집회와 대비되어 어쩐지 더 허전했다. 이 곳 재능교육 외에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푸른기술, 동희오토, 행신동 등 다른 장기투쟁 중인 투쟁사업장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곳곳에서 저마다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연고전에서 연대(延大)정신을 발휘했다면 이번엔 투쟁사업장에서 노조원들과 연대(連帶)정신을 발휘해보자.


박소원 기자 parksowon@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