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2천cc'를 마실 때마다 400cc는 증발하기에

세순曰 “주량이 얼마나 돼요?”
연돌曰 “아, 전 꽤 마셔요, 맥주 2천cc 두 개는 마시거든요.”

다시 새 학기가 된 요즘, 그래서 낯선 이들과 술자리도 많은 요즘 종종 나눌 법한 대화다. 그나저나 맥주 4천cc가 주량이라니 연돌이 참 많이도 마신다.
여기서 실없는 문제 하나

1. 이날 연돌이가 맥주 약 3천cc를 마시고 '훅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안주 없이 술만 마셔서
b.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c. 사실 세순이에게 허세를 부렸던 것일 뿐 원래 주량은 3천cc여서
d. 그동안 마셨던 2천cc 용기에 담긴 맥주가 사실 2천cc가 아니기 때문에


눈치 빠른 연세인이라면 이미 예상하듯 정답은 d번이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자주 찾는 신촌 내 술집을 조사해본 결과 2천cc를 시킬 경우 맥주 2천cc를 담아 주는 술집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술집 이름   표본1(단위: cc)   표본2   평균 
W라 1550 1625 1587.5
P눈 1500 1520 1510
H베르크 1580 1550 1565
G하우스 1580 1580 1580
C치킨 1610 1620 1615
B스 1460 1660 1560
W비 1640 1630 1635
T치킨 1520 1590 1555
B타운 1700 1600 1650
G비어 1510 1530 1520

 

잃어버린 400cc를 찾아서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2천cc에 당연히 맥주 2천cc가 들어가겠죠” 2천cc 용기에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갈 것 같냐는 질문에 김지윤(독문·09)씨는 이렇게 답했다. 술을 마시면서 ‘맥주 정량’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대부분 이처럼 가볍게 넘겨버린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신촌 내 술집 10곳에서 2천cc짜리 맥주량에 대한 표본을 두 개씩 추출한 결과, 2천cc일 것이라 굳게 믿어왔던 맥주량의 평균은 1천578cc에 불과했다.
즉, 맥주 2천cc를 주문할 때마다 소비자는 400cc가 넘는 양을 손해를 보기 때문에 2천cc를 5번 주문해야 진짜 2천cc 맥주를 4번 마실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상식선을 넘는 결과다.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오차 뒤에는 소비자들이 모르는 하나의 진실이 감춰져 있었다. 맥주 2천cc 용기 바닥에 조그마한 글씨로 ‘용량 1천700cc’가 적혀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술집에 공급하는 용기포장박스에 분명히 1천700cc로 표기한다”고 하이트 맥주 홍보팀 담당자는 말했다. 즉, 술집에서 2천cc로 표기하는 것은 술집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개인 영업장에서 영업을 어떻게 하는 지까지 맥주 업체에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맥주 용기는 국가에서 따로 검사를 해요”라고 한 한국소비자원 신유경 상담원의 말도 맥주 업체 측의 말을 대변한다. 즉, 용기 제작에는 일종의 ‘꼼수’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검사를 받는 1천700cc 용기가 술집에서는 2천cc를 담을 수 있는 것처럼 둔갑하는 셈이죠” 신 상담원은 덧붙였다.
그러나 맥주 업체가 만든 용기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니다. 맥주를 용기에 담을 때는 거품이 생겨 용기에 꽉 차게 담더라도 소비자가 먹을 수 있는 맥주의 량은 1천700cc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해본 결과 용기에 담긴 맥주가 1천700cc였던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W하우스의 맥주 2천cc. 2천cc에 한참 모자란다.

모르면 ‘몰라서’ 알면 ‘알아도’ 어쨌든 2천cc

맥주 회사의 주장과 달리 맥주 2천cc 용기가 1천700cc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술집도 있었다. ‘비어타운’ 업주는 “2천cc 용기를 맥주회사에 주문하면 이 용기를 주기에 2천cc가 들어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용기 아래 적힌 ‘용량 1천700cc’라는 글자를 보지 못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당연히 2천cc일 것으로 생각했고, 1천700cc라고 적힌 글씨가 매우 작아서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술집에서 의도적으로 맥주를 조금 주려고 했다면 술집 자체적으로 용기를 일정 부분 채우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기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거의 모든 술집에서 2천cc 용기에 맥주를 꽉 채워서 줬다. 즉, 술집 주인 말처럼 2천cc 용기 자체가 작게 나왔단 사실을 정말 몰랐다면 술집이 ‘나쁜 놈’으로 오인 받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
반면 ‘맥주 2천cc의 비밀’을 알고 있는 술집 주인도 있었다. ‘C치킨’ 업주는 “사실 2천cc라고 파는 맥주가 2천cc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사를 시작한지 2년쯤 되던 해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한 때 메뉴판에 1천700cc로 표기해서 판 경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1천700cc로 표기된 것에 대해 의아해 하던 손님들이 많았고 그것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다시 2천cc라고 표기하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말해봤자 어쩔 수 없다고?

술집에서 맥주를 정량대로 주지 않는 것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현실적으로 술집에서 정량을 지키도록 강제할 수 있는 행정적 수단은 없다. 서대문구청 보건위생과 김은정 직원은 “구청은 식품위생법에 명시된 대로  위생 상태,유통기한 등에 대해서만 조사한다”고 말했다. 생맥주의 양이 정량인지는 관련법 상 규정이 없어서 서대문구청에서는 조사할 수 없다. 단지, 정량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민원이 들어왔을 경우에만 해당 술집에 주의를 준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했을 때 ‘영업정지’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조된다. 이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정량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
1천700cc가 채 되지 않는 맥주량을 2천cc로 속여 판 것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만 2천cc가 안된다는 사실을 안 경우에는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전지연 교수(법과대·형법)는 “술집에서 맥주 용기의 정량이 2천cc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을 때 이를 반박할 수 있는 방안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술집을 고발하기 보다는 구청에서 술집에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행정법에 관련 규정을 만드는 등의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 교수는 덧붙였다.
2천cc맥주가 사실 1천700cc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이는 맥주 회사나 술집 업주 모두 알고 있었다고 볼수 밖에 없다. 맥주 회사는 “저희는 분명하게 1천700cc로 표기한다”고 했고, 술집 업주는 “2천cc는 자연스레 통용되는 업계 내의 일반명사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신촌에서 맥주를 들이키는 대학생 등 소비자들은 이에 대해 한 마디로 ‘속았다’는 반응이었다. 비어타운에서 술을 마시던 서강대학교 최민석(경제·05)씨는 2천cc 맥주가 1천700cc도 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 “충격적”이라고 반응했다. ‘소위 2천cc가 실제로는 1천700cc보다 적다’는 오랜 ‘전통’은 소비자가 알면 안 되는 그들만의 비밀이었던 셈이다. 말을 한다는 자체는 어찌 보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들었느냐, 듣지 못했느냐’다. 이제, 너희들끼리 속삭이지 말고 좀 들리게 말해주면 안 될까? 당당하다면 자신있게 말해 달라. “2천cc가 사실은 1천700cc도 안 된다!”고.


박소원 정혜진 김정현 기자 iruntoyou@yonsei.ac.kr
사진 김민경 이다은 기자 winner@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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