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미학을 살피다

플라톤 이래 철학사에서 예술은 세계에 대한 단순한 모방이라고 천시돼 철학자들의 사유대상에서 늘 제외돼왔다. 당시 미학과 회화를 지배하는 원리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와의 유사성에 기반을 둔 ‘재현’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화는 그저 원본이 되는 자연과 얼마나 닮았느냐를 가지고 좋은 그림인지 아닌지 평가받았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모방의 예술을 새로운 창조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예술이 지닌 가치의 전면적인 복권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다만 하이데거, 푸코, 들뢰즈에 와서야 근대 미학과 회화의 재현적 사유의 틀이 비판받고 극복돼 예술과 예술작품이 본격적으로 연구됐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서구 근대이성의 재검토’라는 사조 속에서 등장했다. 우리대학교 철학과 연효숙 강사는 들뢰즈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서양 미학의 전통을 완전히 뒤집어엎었다”고 설명했다. 들뢰즈의 철학은 이데아와의 유사성이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플라톤의 ‘동일성’의 철학이 아닌, 다름을 세계를 창조하는 힘으로 파악한 ‘차이’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들뢰즈는 차이의 존재론이라는 일관된 기준 아래에서 많은 철학자들과 예술작품들을 독해한다. 그동안 예술이 구현하려 했던 자연과의 유사성이라는 절대적 기준이 이제는 들뢰즈에 의해 위협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예술작품에서 그것을 ‘작품’이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연 강사는 “다른 철학자들도 전통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데에 대한 대답을 잘 제시한 사람은 들뢰즈였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주로 베이컨의 그림을 분석한 그의 저서 『감각의 논리』에서 전통적인 재현과 모방의 미학을 비판하는 데에서 나아가, 예술에 대한 새로운 기준으로 ‘감각’의 표현을 제시한다. 들뢰즈는 베이컨을 통해, 근대의 재현적 회화가 포기된 후에 잭슨 폴록의 작품처럼 색이나 형태의 극단적 놀이를 즐기는 추상예술의 방향이 아닌 새로운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방향의 예술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나는 감각 속에서 무언가가 되고 동시에 무엇인가가 또 나의 감각 속에서 일어난다. 결국은 동일한 신체가 감각을 주고 다시 그 감각을 받는다. 신체는 대상이고 동시에 주체다”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감각의 리듬을 보이게 하는 것, 그 리듬의 포착이 바로 예술의 주제이며 그가 말하는 감각의 논리다. 베이컨과 같은 예술가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힘을 스스로 느끼고 그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베이컨의 그림은 감각의 리듬이 드러나는 생성과 구성의 장이 된다.

결국 들뢰즈의 철학은 우리가 그동안 이데아라는 본질과 모방된 허구라는 개념 아래 구분시켜 왔던 주체-대상, 영혼-신체, 인간-자연 등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플라톤 이래로 참된 이데아를 위해서 늘 하늘만 가리키던 철학적 사유들이 이제는 감각을 느끼는 너와 나, 우리 스스로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들뢰즈에게 감각을 느끼는 신체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알’이었다.

이런 감각에 관한 들뢰즈의 철학이 더 확장돼 닿은 예술매체가 바로 영화였다. 들뢰즈는 영화에 관한 체계적 이론을 제시했던 초기 철학자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들뢰즈가 두 권의 저서 『시간-이미지』, 『영화-이미지』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영화의 표현방식인 ‘이미지’가 존재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 출간된 들뢰즈의 『시네마』는 영화 속 이미지의 본질을 더 이상 사진적인 재현론에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화’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형상화는 이미지를 재현성의 구조로 편입,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으로서의 이미지들간의 관계를 통해 사유의 방법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즉 파편화된 이미지들 간의 ‘틈’을 보여줌으로서 재현성의 구조 아래에선 사유하지 못한 것, 비사유에 대한 사유를 드러내는 것이다. 차이를 단순한 다름이 아닌 세계를 창조하는 힘으로 파악한 들뢰즈에게 있어, 이런 비사유에 대한 사유야말로 이미지가 세계를 새롭게 창조해내는 힘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들뢰즈는 영화가 우리를 다르게 보고, 느끼고 감각하도록 해서 결국 영화를 보기전과 다르게 사유하도록 자극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들뢰즈의 영화철학은 ‘차이성’이라는 그의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영화’라는 예술매체를 통해 보다 친숙하게 다가온다. 들뢰즈와 영화에 대해 연구한 한국해양대 철학과 박성수 교수는 “대중문화의 가벼움을 대변하는 영화, 아무리 날아올라도 무겁기만 한 철학, 이런 이질성의 마주침이 영화에 대한 그의 철학적 논의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말한다.

 

김연 기자 periodistayeo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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