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민중을 표현하는 좋은 대상이다. 김수영 시인이 말한 것처럼, 바람보다 빨리 눕지만 그보다 빨리 일어난다는 ‘풀’은 숲의 근본을 단단히 한다는 점에서 나라의 뿌리를 이루는 민중을 닮았다. 생소하게 들릴지 모를 ‘풀뿌리언론’ 역시 풀의 특성을 닮았다. 기성언론이 수도권 중심의 기사를 8개도에 쏟아내는 것과 비교했을 때, 지역의 민초(民草)에 보다 친근하고 영양가 있는 언론이 되길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동네 사람들이 만드는 라디오

<<“어젠 물까지 안 나오더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밖으로는 나가실 수 있었나요.” “아니요. 나가려고 시도했는데 아직도 출입구가 막혀있어서…….”>>

마포FM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9년 ‘마포FM’에서 일주일동안 아현동 철거 단지 거주민의 상황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거주민의 출입 통로가 막히는 등 부당한 사태가 발생하자 마포FM은 최초로 아현동 거주민의 실상을 알리는 인터뷰 방송을 시작했다. 그 후 폐쇄됐던 통로는 다시 열렸다. 송덕호 상임이사가 마포FM이 지역언론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꼽는 대표적인 사례다. 비슷한 경우로, 현재는 두리반*의 실상을 전달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매일 5분간 두리반 사장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마포FM은 서대문구에서 유일한 지역 라디오 방송국이다. 이 방송국은 지역주민의 참여를 지향하며 지역의 고유문화를 발전시키고, 사회적 소수자들의 미디어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 실제로 마포FM은 100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주민에 열린 방송국이다. 또, ‘랄랄라 아줌마’나 ‘이빨을 드러낸 20대’와 같은 프로그램명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프로그램이 당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덧붙여 레즈비언이 주체가 되는 ‘L양장점’이나 비혼 페미니스트가 주도하는 ‘꽃다방’은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한 ‘마포FM’의 취지를 반영하기도 한다. ‘홍대앞’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인디밴드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도 ‘뮤직 홍’을 비롯해 3개나 있다.

풀뿌리언론이 발전하고 제 기능을 하기 위해 컨텐츠의 내용과 제작방식을 모두 차별화해야 한다는 송이사의 말처럼 지역라디오의 뿌리는 그에 맞는 방법과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내겐 서울시장보다 중요한

<<신문을 편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대결구도가 보인다. 어제 본 내용 같은데 오늘도 있다. 우리 지역구에는 누가 나오지? 공약은 뭐지? 뽑지도 못할 서울시장 후보들 공약밖에 모르겠네.>>

제 5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때, 한 번쯤 생각해봤을만한 내용이다. 이 내용은 기성언론의 한계를 보여준다. 기성언론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지만 주로 수도권에 초점을 둔 기사를 쓰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게 친근하지 못하다.

17년 동안 서대문구 사람들의 소식을 알려온 신문사 ‘서대문사람들’은 우리대학교가 위치한 서대문구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풀뿌리언론이다. 서대문사람들은 지역구 선거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주민들에게 전달한다. 지역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선거기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슈화하며, 기성언론이 갖는 한계를 지역언론의 특성으로 극복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구의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에도 취재를 하기 때문에 지역 정치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풀뿌리는 영양실조 상태

풀뿌리언론은 기성언론이 쓰다듬지 못하는 부분을 비추는 대안기능을 하기 에 분명히 그 존재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들이 견고한 뿌리를 내리기에 외부 환경이 녹록치만은 않다.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미흡한 것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서대문사람들’ 취재기자 강현미씨가 “신문사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신문을 만드는 일 이외에 다른 부수익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한 점이 이를 반영한다. 실제로 서대문사람들은 잡지발행을 대행하거나 ‘홍제천축제’를 기획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신문사 살림을 운영한다. ‘마포FM’의 경우, 지역 방송국은 출력할 수 있는 전파의 세기가 1W로 제한됐기 때문에 실내에서는 라디오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는 중소 방송사의 전파수가 20MW인 것과 비교해 매우 작은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정적 자립을 위해 필요한 광고 등의 수입이 미미하고 기부후원도 적다.

민초의 삶을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풀뿌리언론은 민중 지향적이다. 송이사는 “사회의 폐품이라고 자각했던 노년층이 스스로 방송을 제작하면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았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풀뿌리언론이 갖는 순기능은 민중의 노력에 덧붙여 국가의 지원이라는 자양분 위에서 꽃필 수 있지 않을까.

 

*두리반: 동교동 삼거리에서 강제철거에 맞서고 있는 칼국수 식당. 지난 대동제에는 사회과학대 학생회와 연대해 주점을 열기도 했다.

 

김정현 기자 iruntoyou@yonsei.ac.kr
사진 정석현 기자 remij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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