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 대한 세미나

“그렇게 나는 결혼을 하고 날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그 녀석이 벌써 학교에 들어갔네, 어느덧 세월은 날 붙잡고 황혼의 문턱으로 데려와 옛 추억에 깊은 한숨만 쉬게 하네. 나 후회는 없어 지금도 행복해 아직도 나에겐 꿈이 있으니까…”

- 왁스의 「황혼의 추억」 중

 

 

‘아펠’은 우리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창설과 함께, 즉 30년 전부터 시작된 문과대 독사반 사회과학학회다. 아펠은 한 학기의 대주제를 잡고 관련 소주제를 발제자가 각자 찾아오는 방식으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지난 4일 한 회원의 집에서 열린 아펠의 세미나는 만화주인공 짱구의 아빠의 인생이 짧게 요약된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위 「황혼의 추억」의 가사와 너무나도 잘 맞는 동영상이었다.

이날의 발제자 박초롱(독문·09)씨는 “심슨이나 짱구 같은 만화를 좋아하는데 공통점이 따뜻한 가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면서 운을 뗐다. 이제 십 년 안으로 가정을 이루게 될 우리들이 가정에 딸린 구성원으로만 존재하는 데서 벗어나 한 가정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가장이 되면 그때 정말 어른이 되는 것일 터. 그래서 ‘가정’이라는 이날의 주제는 아펠의 이번 학기 주제인 ‘어른이 된다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배우자상으로 옮아갔다. 인생에서 가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다들 공감한 데다가, 그 출발점은 ‘배우자’라는 데 역시 동의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돌아가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배우자상을 얘기했다. 남을 배려할 줄 알지만 자기도 챙길 줄 아는 사람, 자기 가족만 챙기지 않고 우리 가족에게도 잘하는 사람, 무엇보다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아내로서가 아닌 인격체로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등 다양한 배우자상이 나왔다. 특히 마지막 의견을 말한 김여진(외문·09)씨는 “아내로서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내의 역할을 못하면 사랑하지 않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시댁에 잘하고 가정을 잘 돌보는 전통적 가치를 우선으로 아내를 가정에 묶어두는 사람은 싫다”고 말했다.

배우자상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결혼이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저는 빨리 결혼하고 싶습니다! 전 결혼이 인생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이동은(외문·09)씨는 피곤할 때 집에 오면 엄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곤이 풀리는데 그때 정말 가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과 정말 오래, 평생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집이라면 그녀의 힘든 맘을 어루만져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다른 회원들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인생에 있어 굉장한 힘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어릴 때에는 고민이 생기면 부모님께 기댔고, 이제는 친구들에게 털어놓지만 그것으로도 완벽하게 해결되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두 분이서 술 한 잔 하시고 하는 것을 보면 ‘아, 결혼은 하긴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지만 ‘결혼이 과연 행복한 인생에 대한 유일한 정답일까’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난 솔직히 결혼은 굳이 하고 싶지 않아.” “이유는?” “우리 집은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지만 난 한 곳에서 한 사람과 영원히 같이 있으면서 아이를 기르고 싶진 않아. 난 평생 친구들이랑 살아도 좋고 그렇지, 딱히 누구랑 영원히 같이 살고 그러고 싶지가 않은 거야.”

위처럼 결혼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난다면 둘의 결혼생활은 불행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연습으로 예비결혼, 즉 동거가 거론됐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결혼을 한 뒤 이혼을 하는 것보다 동거를 미리 해 보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결혼과 이혼, 나아가 일부일처제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주로 결혼에 대한 보수적인 고정관념에 대해 느끼는 안타까움이 많았다. 대표적인 개념은 ‘취집’, 즉 취직 대신에 좋은 집안으로 시집 또는 장가를 가서 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려는 주의였다. 회원들은 ‘연대 정도면 시집 잘 가겠지’라는 생각이 여전히 주변의 어른들, 심지어 친구들 사이에도 팽배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그럼 우리는 3천만 원짜리 혼수를 준비중이네?” 씁쓸한 웃음이 이어졌다.

세미나가 끝난 뒤 아펠의 회원들은 아펠의 매력에 대해 친숙한 주제에 대해서도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딱딱한 텍스트를 넘어 틀에 박히지 않은 세미나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아펠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김연 기자 periodistayeon@yonsei.ac.kr
사진 정석현 기자 remij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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