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6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예비후보들은 저마다 분주하다. 그만큼 정책 경쟁도 치열해야 하고 시민사회의 관심도 커져야 하건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천안함 참사 탓에 이것이 가려진 측면도 크다.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젊은이들의 장례는 끝났지만, 천안함 참사의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근거 없는 억측과 선동은 지금도 난무하고 있다. 한편, 선관위는 역설적이게도 정책 경쟁과 시민사회의 관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지 말라며, 줄줄이 경고장을 날리기에 바쁘다. 이 글의 주제는 바로 선관위가 예의 주시하는 무상급식이다. 평소 무상급식이 절실히 필요하고, 정당하며, 그리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온 사람으로서 선관위가 보란 듯이 한마디 더 보태려고 한다.

요즘 한나라당이 거리에 내건 현수막이나 이런저런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의 홍보물에도 무상급식 실시가 들어 있다. 그 앞에 수식어로 붙어 있는 ‘서민’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한나라당도 결국 무상급식에 찬성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단언컨대, ‘서민 무상급식’은 무상급식이 아니다. 이는 저소득층 아이와 그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각종 선별 과정을 거쳐 무료급식을 제공해온 현재와 같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단지 이름만 바꾼 기만적인 위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한나라당마저 무상급식 프레임을 통째로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프레임의 중요성은 이렇게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그런데, 무상급식의 이면에는 프레임 이전에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패러다임의 전환 문제다. 무상급식이 그간 사회적 이슈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이전의 낡은 패러다임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바로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경계하고 있는 것은 4대강 사업에 비하면 몇 푼 되지도 않는 무상급식 예산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이다. 무상급식으로 뚫린 구멍이 그간 완고하게 버텨온 둑마저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물 타기와 찬물 끼얹기를 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과 확산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무상급식 이슈의 사회적 확산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무상급식을 넘어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더욱 넓혀나가는 것과 함께 관련 법과 제도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사회보장기본법을 비롯한 현행 사회보장 영역의 제반 법과 제도가 신청주의와 선별주의의 틀에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는 일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무상급식 문제는 그냥 아이들 밥 문제로만 남을 수도 있다. 무상급식 문제를 단순히 밥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복지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키워드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전면 무상급식의 실시에 주목하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의 정수 가운데 하나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아무런 심사나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는데, 역시 아무런 심사나 조건 없는 전면 무상급식의 실시는 이를 향한 작지만 매우 소중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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