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숨어있는 ‘자발적 외톨이’ 그대들을 마주하다

랜덤한 사람이 대화방에 입장했습니다.
편하게 대화하시길 바랍니다!~
낯선 상대: ㅎㅇ
낯선 상대: 여?
당신: ㄴㄴ
대화가 끝났습니다.

위의 대화는 클릭 한 번이면 동시에 접속한 익명의 사람들 중 무작위로 일대일 대화를 연결해주는 ‘랜덤채팅’ 사이트 「가가라이브」에서 기자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클릭 한 번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아예 한마디도 해보지 못하고 지나친 상대도 많았다. 그 결과, 기자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수십 명의 상대와 마주친 셈이 됐다. 어느 새 ‘낯선 상대’를 바꾸는 클릭에 익숙해진 기자는 다시 한 번 마우스를 클릭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사촌’보다 특정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맺는 인맥관계인 ‘일촌’에 더 익숙한 우리세대는 지인의 근황을 아는데도 마주한 얼굴이나 목소리보다, 공개된 사진이나 일기를 통하는데 익숙하다.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인간관계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아이폰이 한국에 보급되면서 급속히 늘어난 아이폰 유저들로 인해 이런 추세는 더욱 다양한 양상을 보이게 됐다. 하루 종일 함께하는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특성상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아래 어플)을 통한 사용자들의 무작위적인 접촉이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who’s here’이라는 어플의 경우, 사용자가 이 어플에 접속하면 자신의 위치가 지도 위에 파악될 뿐만 아니라 접속해 있는 다른 유저들의 위치, 그리고 둘 사이의 거리까지 나온다. 원한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유저와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가 써놓은 대화명을 보고 말을 건넬 수도 있다. 기자가 ‘who’s here’에서 만난 닉네임 ‘치킨먹고싶어’도 “정말 피상적인 대화가 오가지만 일상 속의 지루함을 벗어나게 해줘 계속 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용자의 직접적 언급과 기자의 체험을 통해 이런 무작위적인 만남은 깊이가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려 하기보다 ‘심심풀이 땅콩’식 만남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만남이 계속 늘어나고 사람들 또한 이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런 관계에서 사람들은 평소 사회적 기대 때문에 억제할 수밖에 없었던 행동들을 한다. 대표적으로 욕설을 마구 내뱉는 사용자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2010 트렌드 웨이브』가 지정한 올해 큰 트렌드 중 하나인 ‘정서적 허기’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최근에 혼자이기를 자처하는 ‘자발적 외톨이’가 증가하고 있는데 흔히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와는 달리 이들은 최소한의 인맥관리를 한다. 하지만 이들이 머무르는 사이버 공간인 ‘랜덤채팅’ 사이트 속 대화는 소통이라기보단 공허한 외침의 반복이라서 오히려 또 다른 외로움과 공복감을 낳는다.

고시생 커뮤니티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적자생존의 사회다. 따라서 모든 것을 개인이 해결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시 친구’는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고시생들 사이에서 함께 고시를 준비하는 동료로서 격려와 조언을 해주지만, 연락은 오로지 핸드폰으로만 해 서로의 신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네이버 카페 ‘공무원시험 수험생 모임’의 닉네임 ‘사루’는 소규모 스터디를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 그는 “고시생들은 ‘고시 합격’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고 이는 결혼과 생계에 직결되기 때문에 고시생 사회가 조금 더 냉랭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스터디원을 구할 때에도 오로지 핸드폰번호와 스터디표에 들어갈 닉네임만 물어본다. 물론 상대방에 대한 더 깊은 정보가 궁금하긴 하지만 서로의 정보를 더 알려고 하면 할수록 부담이 되고, 현실적으로는 경쟁자이기 때문에 관계를 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는 “온라인으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빨리 끊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반면, 온라인에서는 자그마한 글 하나, 댓글 하나로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특성도 있다”면서 “더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상과 진도를 체크하는 스터디표를 올릴 때마다 매번 시험문제를 올려 연속으로 10문제를 맞춘 사람은 명예의 전당에 올려주고 상품도 제공한다. 고시 준비생이라는 상황에 맞게 시험공부에 대한 성취도 달성하면서, 동시에 표를 확인하며 달린 댓글로 시시콜콜한 서로의 일상도 공유한다. 공감하고 또 다시 댓글을 달면서 소통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랜덤한 인간관계는 계속 늘어가고, 그로 의해 파생되는 문제들도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사루’와 같은 개개인의 ‘무작위적이지 않은’ 노력이 진정한 인간관계의 의미를 찾고,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데에 분명 힘이 될 것이다.

 

김연 기자 periodistayeon@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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