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성 논란 딛고 획기적인 기획으로, ‘케이블’의 고정관념을 깨다

“공중파가 무슨 케이블 같네.”
케이블 같은(cable-like) : 프로그램의 소재, 혹은 이를 다루는 방식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케이블 같다’의 의미다. 방송의 공공성이 부재하다는 뜻이나 자극적인 맛에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는 의미를 포함시켜도 좋다. ‘케이블’이 이러한 부정적인 함의를 갖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95년 우리나라 케이블TV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케이블 프로그램(아래 케이블)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비도덕적·선정적·자극적…풍기문란 케이블TV?

지난 2007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개팅을 진행하는 한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의 외모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평가를 여과 없이 내보내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2008년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선수’들의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는 명목 하에 성을 소재로 한 과감한 대화와 남녀간 스킨십 장면을 방영해 선정성 시비가 붙었다. 2009년에는 몇 해 전 자살한 여자 탤런트와 무속인의 접신(接神)을 다뤄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작, 표절 시비 역시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이러한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케이블에서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Mnet의「슈퍼스타K」, tvN의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아래 롤러코스터)」,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등이 그 주역이다. 2009년 방송가를 뜨겁게 달궜던 이 프로그램들은 케이블에서 제작됐지만 영향력은 공중파 못지않았다. 자극적·선정적 요소가 거의 없었음은 물론, 다른 여느 프로그램에서도 본 적 없는 참신한 기획을 바탕으로 케이블로서는 이례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케이블에 대한 시청자들의 고정관념도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케이블의 질적 향상 요인으로 이상우 교수(정보대학원·미디어 산업 및 정책)는 “자본력의 증대”를 꼽았다. 95년 케이블TV 도입 당시에는 사업자 기준이 중소기업으로 제한돼 있었다. 이후 여러 회의 방송법 개정을 거치며 차차 규제가 완화됐고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규모 자본 유입이 전반적인 프로그램 기획력을 높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세분화, 다양화된 시청자들의 취향과 욕구 또한 케이블TV의 발전을 촉진했다.

 

 

주목도 높였으니 진가 발휘할 차례

위와 같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덧붙여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케이블 업체 내부의 자발적인 방향 전환도 있었다고 분석한다. 선정적 요소는 “대중들의 눈을 잡아끌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이제 어느 정도 주목도가 높아졌으니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CJ미디어의 계열사 tvN의 변화가 가장 대표적이다. CJ미디어 홍보팀 장수영 대리는 “tvN의 경우 개국 2년째인 2007년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종합오락채널’로 컨셉을 바꾼 뒤 계속해서 선정성을 줄여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극적인 방송으로 자주 논란에 휩싸였던 tvN은 그 즈음을 기점으로 획기적인 프로그램들을 내놓아 왔다. 국내 최초 시즌제 드라마로 현재 4년 째 시즌을 이어가고 있는「막돼먹은 영애씨」와 한 경제지의 2009년 ‘올해의 히트상품10’에 꼽히기도 한 「롤러코스터」를 비롯해 「택시」, 「화성인 바이러스」 등이 있다.

「롤러코스터」의 이성수 PD와 「막돼먹은 영애씨」의 박준화 PD는 공중파와 대비되는 케이블 프로그램만의 강점으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들었다. 이 PD는 “공중파 제작에는 이미 기본 룰이 형성돼 있다”며 “반면 케이블은 이런 제약이 적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여지가 많은 편”이라 말했다.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PD는 “공중파는 할 수 없는 콘텐츠를 케이블은 다룰 수 있다”고 짚었다. 이를테면 비대중적인 마니아 취향의 콘텐츠가 공중파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지만 케이블에게는 집중 공략해야 할 틈새시장이 된다. 뚱뚱한 30대 노처녀의 일상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찍어낸 다큐드라마「막돼먹은 영애씨」, 남녀를 적나라하게 비교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새로운 코미디 장르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 등은 모두 이러한 케이블만의 강점을 잘 살린 예다.

아직은 미약하나 곧 창대하리라

이 교수는 “아직은 공중파의 매체파워가 훨씬 크다”고 말한다. 케이블의 영향력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기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2~3%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 케이블TV는 공중파 콘텐츠 재방송 없이 유료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이라며 “자체제작 프로그램만으로 경쟁하려면 콘텐츠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자극적 소재의 잦은 등장이나 선정적인 장면 역시 여전히 지적되는 문제다.
그러나 전망은 밝다. 정 평론가는 “아직까지는 열세”라면서도 “앞으로 매체가 다변화됨에 따라 하나의 콘텐츠 공급원으로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 내다봤다. DMB, IPTV 등 다양한 매체의 증가는 콘텐츠 수요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케이블 콘텐츠 발전에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PD는 공중파 못지않은 파급력을 지니는 프로그램들이 점점 더 빈번히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대로 발전해간다면 미국처럼 공중파와 케이블이 비등비등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tvN 송창의 대표는 ‘케이블라이크(cable-like)’를 ‘제작 여건은 공중파에 비해 열악하지만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창의적이고 벤처적인 태도’로 정의했다. ‘케이블 같다’의 의미가 바뀔까. 지켜볼 일이다.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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