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비움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40일간의 기독교 절기인 사순절, 그 한 복판에서 법정스님의 입적 소식을 들었다. 내가 처음 법정스님이란 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 명동성당의 강연회를 통해서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의 후유증으로 모두가 힘겨워 할 때였다. 그 때 가톨릭 성당의 거룩한 제단에서 무명옷의 승복을 입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무소유의 정신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행복에 대해 말씀하시며 맑고 향기로운 미소를 보이신 스님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고 그 뒤 그분의 책 몇 권을 관심 있게 숙독하며 그분의 영혼이 참 맑고 향기롭다는 사실에 경외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 분의 영혼을 담은 그릇인 육신의 삶의 모습도 그 만큼 맑고 싱그럽고 너그럽다는 사실을 길상사를 방문하며 더욱 느꼈다.

법정스님은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목사 등 기독교계 지도자들과의 교분만이 두터웠을 뿐 아니라 자신이 주도하여 세운 길상사의 앞마당에 독실한 가톨릭 조각가에게 의뢰한 성모마리아를 꼭 닮은 관음보살상을 세워 종교 간의 상호존중과 화해와 상생이 각 종교의 제단 한 복판으로부터 실천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을 보며 거룩한 하늘에 대한 지식조차도 한 소유에 불과하다는 그분의 가르침이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우리 중생들은 얼마나 많이 구획 나누기를 좋아하고 조그마한 실천 보다는 지적유희나 소유의 드러냄 등을 통해 서로의 상처들을 돌보지 않고 더 드러내며 신음해 가고 있는가를 길상사의 마리아 관음보살은 엷은 미소로 말해주고 있다.

2005년 부처님오신 날 기념음악회장에선 김수환 추기경과 나란히 서서 음악회 수익금 전액을 가톨릭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하며 나눔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스님의 귀한 모습은 아직도 내 눈 안에 있는 듯하다. 나는 기독교의 목사이고 신학자이고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기독교의 전통 안에서 섬기고 따르기를 즐겨 하지만 불교의 스님들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함께 춤추고 있음을 느끼고 감사한다. 자신이 믿는 종교와 믿음의 체계를 목청 높여 설득하며 강요하려하기보다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이세상의 돌봄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자연스러움으로 살아가며 그 깨달음의 빛의 일부를 조용히 비춰주고 있는 각 종교의 위대한 영혼들이 함께 이 땅을 살아가고 있음에 한없는 감사를 느낀다. 그 분들이 있어 이시대의 아픔이 치유되고 한없는 영의 목마름이 해갈을 얻는 신선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것이 곧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삶에 대한 긍정이며 인간에 대한 축복이라 굳게 믿는다. 종교가 세상의 온갖 상처들의 치유와 희망의 근원지가 되기보다 오히려 분쟁과 나뉨의 원인이 되어져 가고 있는 이 허물어져가는 우리들의 지구토양 위에 법정스님의 귀한 무소유의 정신은 종교 간의 화합과 일치에도 큰 획을 그었다고 믿는다. 자신의 믿음조차도 소유로 여기지 않았다는 그분의 삶의 모습이 참으로 맑고 향기롭다. 또한 그분의 마지막 유지에서 밝힌 “제가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다”는 말은 가슴에 남는다. 너무나 인간적으로 우리 곁에 와서 우리를 떠난 법정스님의 삶의 자취에서 사순절 예수님의 향기와 함께 오늘도 우리 인류 각 민족을 그 방식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깊고 깊은 섭리를 느낀다. 귀한 가르침을 주시고 가신 법정스님의 맑은 영혼에 영원한 생명이 함께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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