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낙태 찬반논쟁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하긴, 몇 가지 상황을 제외하고는 전면적으로 낙태가 금지되어 있는 국가에서 그간 논쟁이 없었던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다. 다만, 이 논쟁이 그간 낙태반대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낙태반대운동연합이나 종교계 혹은 여성인권단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기고백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의아할 뿐이다. 갑자기 어떤 중대한 사명을 띠고 낙태반대의 기치를 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스로 위기라 부르는 산부인과의 현재적 문제들, 즉 낮은 의료수가, 저출산에 따른 환자감소, 전공의 수급문제 등이 배경이 되지 않았겠나 싶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라 자칭하는 이 소규모 의사집단은 그간 ‘산모의 구명 차원 이외의 낙태 시술을 해 온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의사들부터 스스로 자정에 나서고 국민과 정부에게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자정’노력은 낙태시술을 한 산부인과병원에 대한 고발로 이어졌다. 그 후, 일선 상담소에는 미성년인데 고발조치 이후 낙태시술을 해주는 곳이 없다, 성폭력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다른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시술비용이 몇 백 만원이라고 한다는 등의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의사회 측은 과도기에서 오는 부작용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당장 몇 개월 후에 이러한 ‘부작용’의 구체적 내용들이 어떻게 바뀔지 걱정이다.

낙태는 낙태라는 한 국면에서만 이야기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낙태는 원치 않는 혹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의 결과이다. 그리고 원하지 않은 임신에는 대부분 원하지 않는 성관계, 준비되지 않은 성관계가 존재한다. 또한 원하지 않는 성관계, 준비되지 않은 성관계에는 평등하고도 충분한 당사자들의 소통의 부재가 존재한다. 이 또한 개별 관계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한편, 원치 않았던 임신이더라도 출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여지는 개인의 선택보다는 누구라도 아이를 마음 편하게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임신을 출산으로 연결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이나, 무조건적으로 낙태시술을 중지하겠다는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기 선언은 이 모든 문제들을 몹시 단순화시킨다.  사실상, 낙태는 여성의 삶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어떤 여성도 낙태를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그 누구보다 신중하고 진지하게 낙태를 고민하는 주체는 여성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낙태가 불법인 상태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는 한 번도 제대로 수면위로 나온 적이 없다. 오히려 출산율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무료로 낙태시술을 해주던 6, 70년대에서부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낙태처벌을 강화하겠다는 2010년까지 여성은 단지 인구정책 실현을 위한 도구로만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낙태문제는 완벽한 피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찬반으로 논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짧으면 임신 12주, 길면 24주의 기한 이내에 본인의 요청이 있으면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하용하고 있다. 낙태 이전에 상담을 필수로 하는 국가도 있고 아닌 국가도 있다. 미성년자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요하는 국가도 있고 아닌 국가도 있다. 낙태시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국가도 있고 아닌 국가도 있다.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산적하다. 당연히, 이 모든 논의에서 가장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임신과 출산의 유일한 주체인 여성들의 목소리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