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디아]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의 한 장면. 은찬(윤은혜 분)은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의 통장 잔고를 셈한다. 은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금액들은 내레이션으로 발화되는 동시에 버스 유리창에 가시화된다. 현실과 연관된 정보를 현실 위에 그대로 입혀내는 이 장면,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증강현실은 이미 당신의 주머니 속에서 실현되고 있다.

상상에서 깨어나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란 가상으로 만들어진 정보를 실제 환경에 보여줌으로써 사용자가 제시된 정보와 실시간으로 교감하게 해 정보의 사용성과 효용성을 극대화시키는 기술이다. 휴대폰 카메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면 카메라가 입술을 인식해 과자를 먹는 등의 흥미로운 게임을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증강현실의 일종이라 볼 수 있으나, 정보와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교감하며 더 깊은 정보를 추출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완벽한 증강현실의 예라고 보기는 힘들다. 제대로 된 증강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상 정보와 융합된 현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장치 △정보를 어디에 제시할지를 결정짓는 추적 기술 △가상의 정보를 얼마나 사실적으로 표현하는지와 연관된 시각화 기술 △정보와 사용자 사이의 상호작용 등의 많은 요건들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증강현실은 90년대부터 등장한 개념이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실제 장비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휴대폰이 증강현실을 담아내는 디스플레이 장치로 활용된 것이 계기였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바로 그것. 지난 2009년 6월 네덜란드의 한 기업이 ‘레이어(Layar)’라는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카메라로 인식한 주변 정보를 스마트폰 화면 위에 보여준 것이 시초였다. 레이어는 실제 환경을 그대로 비추는 화면 위에 새로운 정보 막(레이어)을 한 층 덧씌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어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전 세계 IT업계들이 모바일 형태로 구현되는 증강현실 기술에 주목했다. 레이어를 필두로 다채로운 증강현실 기술들의 개발이 가속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로 건물을 비추면 휴대폰 화면을 통해 건물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최근 국내에서 통용 중인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은 카메라에 인식된 특정 장소를 클릭하면, 그 장소를 방문한 사람들의 후기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그 덕분에 굳이 인터넷을 뒤져 맛집을 검색하지 않더라도 휴대폰 하나면 유용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 많은 스마트폰 유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심지어 카메라를 밤하늘에 비춰 카메라가 향한 장소에 위치한 별자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해보였던 상상 속의 기술들이 우리 눈앞으로 바짝 다가온 것이다.

별자리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화면.


이는 비단 스마트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실제로 외국의 한 여성복 쇼핑몰은 직접 옷을 입어볼 수 없는 인터넷 쇼핑몰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컴퓨터에 연결된 카메라를 통해 옷이 자신과 어울리는지 대조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조립 과정, 혹은 기계를 수리하는 과정 역시 글로 풀어놓은 설명서 없이도 어디를 조립하면 될지 어느 부분을 고치면 될지 실시간으로 안내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인권 교수(공과대·프로그래밍언어/컴퓨터그래픽스)는 “증강현실은 응용분야가 넓고 실생활에 당장 적용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실로 증강현실의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한 셈이다.

설익은 증강현실, 맛있어질 때까지 지켜봐야

증강현실에 쏠리는 농도 짙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아직 기술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 사실상 스마트폰에 쓰이는 어플리케이션을 제외하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증강현실 기술은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기술이 상용 단계에 이르기 전에 너무 빨리 소개돼 정작 제대로 된 기술이 도입될 쯤에는 가치가 반감되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내비친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에서 구현되는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들은 단순히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위 센서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센서만을 가지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연구 중인 증강현실 기술에 비해 정확성과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의 해비 유저인 이정우(24)씨는 “호기심은 생기는데 지속적으로 쓰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전자책이 나왔어도 여전히 인쇄된 책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지적했다. 주로 지도나 방향을 제시하는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들은 특정 주제에 관한 정보 활용에는 비교적 유용한 편이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정보를 담고 있는 인터넷에 비해 어플리케이션에 쌓여있는 정보의 양이 턱없이 부족해, 필요할 때마다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아직까지 재미 그 이상의 감동을 주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증강현실의 미래는 ‘맑음’

현 단계에서 증강현실 기술은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특히 매분 매초 움직이는 실제 환경에 가상의 정보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적용시키는 ‘추적 기술’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실제 환경 위에 특정한 문양의 바코드를 새겨, 현실 정보와 가상 정보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가시화시키는 기술이 연구 중에 있다. 또한 현실 위에 덧입혀진 가상 정보를 오감을 활용해 경험하는 것, 즉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 정보와의 상호작용이 자유자재로 이뤄지게 하는 것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증강현실, 손 동작 인터페이스 등을 연구하는 우리대학교 미디어시스템 연구실의 한탁돈 교수(공과대·컴퓨터구조/병렬처리)는 “2D 바코드를 통해 보다 많은 정보를 제시할 수 있다면 디스플레이의 한계를 점차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스마트폰이라는 손바닥 안의 세상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차원의 증강현실이 그야말로 ‘현실’ 속에 펼쳐질 것이란 얘기다.

언젠가는 수소 분자와 산소 분자가 합쳐져 물로 변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며 수업을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증강현실의 미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맑음이다.

* 어플리케이션: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의 줄임말로, 사용자가 특정한 기능을 직접 수행하도록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김한슬 기자 gorgeous@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e@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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