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이번 합헌결정에 대한 총론적 평가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5일 사형제 위헌여부 심판사건에서 13년 전의 입장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않은, 오히려 후퇴한 결정을 선언했다. 형식적 측면에서 보면 위헌의견 대 합헌의견의 비율이 2:7에서 4:5로 개선된 듯 보이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종전의 ‘단계적 폐지론’보다 후퇴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6년 결정에서는 “위헌·합헌의 논의를 떠나 사형을 형벌로서 계속 존치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찬반의 논의도 계속돼야 할 것이고, 시대상황이 바뀌어 생명을 빼앗는 사형에 의한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된다거나 국민의 법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에 이르면 사형은 곧바로 폐지돼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벌로서 사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당연히 헌법에도 위반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아직은 합헌이라고 선언하지만, 사형제는 언젠가는 폐지돼야 할 형벌제도’라는 종전의 입장에 대한 재확인도 없었다는 점에서 ‘후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이번에도 우리 헌법에서 야만적인 살인제도를 제거함으로써 문명화된 헌법으로 발전시켜야 할 스스로의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

 이번 합헌결정은 법리적 측면에서 명백한 오류

헌법 제110조 제4항에 의해 사형이 형벌로서 규정되고, 그 형벌조항의 적용으로 사형이 선고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우리 헌법은 적어도 문언의 해석상 사형제도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의 규정은 1962년 개헌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 사형제도가 오남용된 폐단을 통제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고 군사법원의 예외적 단심제를 사형선고의 경우에는 배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규정된 것임을 고려할 때, 결코 헌법적 차원에서 사형제를 승인하려는 결단이라고 볼 수 없다. 소수의 위헌 의견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는 간접적으로도 헌법상 사형제도를 인정하는 근거 규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편, UN이 1998년과 2002년에 실증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형벌의 하나로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등의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한 응보나 특별예방 또는 일반예방이라는 형벌의 목적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명백하다고 볼 수 없다.

사형제가 범죄예방효과가 있다면, 사형제를 폐지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형제 폐지 이후 흉악범죄가 증가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에서도 ‘사형제의 흉악범죄억제 가설’은 실증되지 않았다. 그 결과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가 사형제를 다시 부활시킨 사례 역시 없다. 또한, 형벌의 일반 예방적 기능은 굳이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지 않더라도 예컨대 가석방이 불가능한 무기형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
반면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은 오판의 위험에 대하여 그로 인한 기본권 제한의 완화나 회복을 위한 어떠한 수단도 없으며 그 침해의 정도가 궁극적이고 전면적이라는 점을 상기해봐야 한다. 요컨대, 사형제도는 이를 통하여 확보하고자 하는 중대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기능을 대체할 만한 무기자유형 등의 수단을 고려할 수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범죄인의 근원적인 기본권인 생명권을 전면적이고 궁극적으로 박탈하는 지나친 제도이므로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사형제도는 이미 중대 범죄가 종료하고 상당 기간이 지난 후 체포돼 수감 중인 한 인간의 생명을 법이라는 형식을 앞세워 일정한 절차에 따라 빼앗는 ‘제도살인’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은 양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어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일 수 밖에 없는 개념이고, 본질적인 부분과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결국 사형제도는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다.

향후의 과제

범죄에 대한 대응은 범죄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범죄와 범죄자 발생의 원인에 대한 대응, 피해자에 대한 보호 등 다각적 관점에서 모색돼야 한다. 사형선고가 논란이 되는 범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넬슨 만델라가 지적한 것처럼 범죄가 척결되지 않은 것은 사형이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치안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보다 더 잘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사형제도를 존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며 인간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범죄 피해자를 위해서도 가해자의 생명박탈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 구조책이 보완돼야 한다. 현행 범죄피해자구조법은 생명을 잃은 피해를 입은 경우 그 유족이 3명 이상이고 가해자가 불분명하거나 가해자가 배상능력이 없는 경우 최고 3천만 원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족이 2명 이하일 경우 구조금은 2천만원 이하이다. 가장을 읽고 풍비박산이 난 유족들의 사정을 생각해볼 때, 국가가 충분한 보호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리고 가해자에게도 반성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인간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고의 규범으로 선언하고 있는 우리 헌법이 취할 태도이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서는 이제 국회의 노력이 중요해졌다. 대부분의 나라가 헌법재판의 작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형제 폐지 법률을 제정하는 방식을 통해 사형제도를 폐지하였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15대 국회 이래 계속하여 사형폐지 법률안이 제출됐다. 그러나 진지한 논의와 여론수렴절차가 진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8대 국회에도 이미 2개의 사형폐지법률안에 제출돼 있는 상태이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 등 대안 도입에 대한 검토와 함께 사형제 폐지를 위한 국회의 책무수행을 촉구한다.


이상갑(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장)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