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링족 ; 몰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소비자 집단

오동준(교육·08)씨는 주말마다 여자친구와 집 근처 코엑스몰을 찾는다. 무엇을 하는지 묻자 “그냥 영화 보러간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오씨가 정말 영화만 보는 것은 아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사이 양 옆으로 늘어선 매장의 쇼윈도들에 시선이 멈추기도 한다. 왜 몰을 찾느냐는 물음에는 “여러 군데 돌아다니지 않아도 한 곳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고 말한다. 스스로 자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씨는 이미 ‘몰링족(malling族)’이다.

 

영등포 타임스퀘어몰 내부

 

‘몰링’이란 ‘몰(mall)’에 '-ing'를 붙인 신조어다. 기존의 ‘쇼핑’ 개념이 상품을 구입하는 데 한정된 소비행위였다면 몰링은 쇼핑에 식사, 오락, 산책 등 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몰링족은 이러한 몰링을 즐기는 새로운 소비자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7년 New 소비코드5’로 몰링을 꼽았던 LG경제연구원의 박정현 책임연구원은 지난 1월 ‘2010년 주목할 소비트렌드7’에 다시 한 번 몰링을 올렸다. 이를 방증하듯 일산 레이킨스몰, 대구 봉무 라이프스타일센터, 부산 롯데타운 등 오는 2011년까지 개장을 앞둔 몰이 전국적으로 20여 개에 달한다. 이에 대해 용산 아이파크몰 이택근 대리는 “몰링을 전면에 세운 전략이 없다면 유통업계는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도 몰링문화는 꾸준히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도 몰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행위 자체는 낯설지 않다. 지난 2000년 최초의 대형 복합 쇼핑몰이라 할 수 있는 삼성 코엑스몰이 들어선 지 10년이 지났고, 이제 몰은 일상적인 공간이 됐다. 몰링이라는 용어가 생경하게 느껴질 뿐이다. 한 몰에서 직접 만나 본 몰링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고찰해보자.

몰링족 따라 몰 거닐기

지난 해 문을 연 영등포 타임스퀘어. 로비에 들어서자 4층 높이의 천장까지 확 트인 중앙홀과 그 한가운데 놓인 둥근 대형벤치가 눈에 띈다. 벤치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쉬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이나 모퉁이 등 몰의 곳곳에는 널찍한 휴식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예전이라면 매출증진을 위해 매장으로 채워졌을 공간이 고객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타임스퀘어 윤강열 과장은 “몰링은 단지 쇼핑만이 아니라 여가와 휴식까지 고려하기 때문에 고객이 쾌적하게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여유롭게 사용하는 게 오히려 이익”이라며 “이런 새로운 동선의 쇼핑몰들이 늘어날 것”이라 예측했다.

 

용산 아이파크몰 조감도

 

음식점이 몰려 있는 층의 또 다른 벤치에서 만난 조아라(22)씨는 남자친구와 ‘몰 데이트’ 중이었다. 영화관 입구에 마련된 휴식공간에는 고등학생 권예지(19)양이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평소 몰에서 ‘아이쇼핑’하기를 즐긴다는 권양은 또래 친구들 역시 수시로 몰을 찾는다고 했다. 이처럼 몰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여가시간을 보내는 젊은 층이 많은 것은 무엇을 사야 한다는 부담 없이 즐기다 갈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 때문이다. 몰 운영자들은 오히려 장기적인 차원에서 이를 장려한다. 이러한 몰링문화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고객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몰의 지하는 한 쪽으로는 대형마트, 다른 한 쪽으로는 백화점과 연결돼 있다. 백화점 입구의 벤치에는 유독 중장년층 이용객이 모여 있었다. 푸드코트에서 사온 간식을 먹던 한 50대 여성은 “백화점에 왔을 뿐 이 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거긴 젊은 사람들이 가는 데 아니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몰 이용객의 대부분은 20~30대인 반면 40대 이상의 중년여성들은 백화점을 자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 트렌드 키워드』로 몰링을 꼽은 마케팅컨설팅업체 (주)리드앤리더의 김민주 대표는 “현재 몰링은 지나치게 젊은 층 중심인 게 사실”이라 지적하며 “앞으로는 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라 장년층에 특화된 몰이 늘어날 것”이라 몰링문화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몰링, 현대인을 위한 선물상자?

조씨와 권양 등 몰에서 만난 이들은 다른 나이대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몰의 방문목적을 묻는 질문에 모두 난처하다는 듯이 “그냥…”으로 입을 뗐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왔다”는 이윤정(38)씨의 대답처럼, 몰링족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간을 유쾌하게 보내기 위해 몰을 방문한다. 이는 문화적 행위로서 몰링이 물건 구매라는 목적이 뚜렷한 쇼핑과 구분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또 다른 공통점은 왜 대형 복합 쇼핑몰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모두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가시간은 제한돼 있는 반면 소비자들의 욕구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 오늘날,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몰링은 각광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09년 9월 아이파크몰에서 진행한 이벤트에서 작성자 'redmapl'은 몰링을 ‘바쁜 현대인에게 주어진 끝없이 열리는 선물상자’로 정의했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선물상자’를 즐기는 사이, 어쩌면 자신만의 여가활동을 계획하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구와의 주말 약속을 근처 몰로 잡은 당신, 편리한 몰링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e@
자료 사진 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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