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추구권은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명문화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행복한 삶은 건강이란 굳건한 주춧돌 위에 세워진다. 이처럼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국민의 권리인 ‘건강인권’이란 '행복추구권'의 주요 명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건강 지표는 위험수위를 가리키고 있다. 신종플루와 같은 변종 전염성 질환의 급속한 확산은 국가적 건강지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주의경보이기도 하다.

정부가 서민들이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는 건강 위기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정부는 오는 2010년 예산(안) 가운데 27.8%인 복지예산 규모를 복지 분야에 역대 최고의 예산 비중으로 책정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두 번째로 내놓은 예산안에는 복지 및 공공의료 예산이 대폭 줄어있다. 저소득층 의료비가 104억원 삭감되었고, 국민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들의 의료지원을 위해 정부가 지급하는 급여인 의료급여가 대상자가 7천명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예산 중 2164억원이 삭감됐다. 긴급복지 예산에서 잘려나간 부분은 1천억원에 이른다. 결식아동을 위한 방학 무료급식 예산은 한시적 지원이었다는 이유로 432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국민건강보호와 증진의 기초가 되는 공공의료나 취약계층 건강을 위한 지원은 모두 삭감됐고, 서민예산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보건의료확충예산은 32.4%가 줄어든 반면, 기업과 병원이 돈 버는 보건산업육성예산은 무려 180%의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해외환자유치사업예산은 2009년 본예산 대비 1000%나 늘었다.

예산은 ‘정책의 숫자적 표현’이다. 이번 예산안을 두고 우려의 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예산안의 행간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보건복지예산안의 ‘산업적 편성’은 이번 정권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17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밝힌 두 가지 대목에 주목해본다. 우선 그는 사후적 복지 대신 ‘능동·예방적 복지’를 제시하면서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와 함께 ‘경제대통령’다운 보건복지 분야에서의 산업적 접근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이번 예산안을 보면서, 국민을 머슴처럼 섬기겠다며 그가 내세운 ‘섬김의 리더십’. 그 초심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깊은 의구심이 든다. 건강인권을 박탈당한 서민들로부터 ‘속빈 강정’이라고 지탄 받는 2010년 보건복지예산은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 국가예산에서 복지부문의 예산은, 개발과 성장의 목표를 위해 쓰고 남을 돈을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건강하게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건강인권과 생명력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북돋워주는 풀무질이라는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건복지부가 추진해야 할 사업들은 돈벌이용 사업이 아니라,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적 불안이 높아지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신종 감염병에 능동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보강돼야 한다.

‘건강인권'의 요체는, 보건의료와 복지정책은 국민 중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익집단으로 권력화된 보건의료 산업의 일방적인 요구로부터 벗어나 온국민이 '건강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국가의 대응방식이 사후약방문식의 질병 치료 중심에서 건강증진을 통한 예방 중심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의료보건복지의 수혜자인 국민이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돼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이루기 위한 활동들을 할 수 있도록 정책과 예산의 편성, 그리고 집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이달희 한국건강연대 사무총장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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