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이었다. 평소 시원찮던 MP3 플레이어가 결국 완전히 멎어버렸다. 짝을 잃고 심심해하는 귀를 달래려 인터넷 중고장터를 뒤적였다. 그러다가 찾아낸 것은 소니에서 나온 작은 MP3 플레이어.
하고많은 제품 가운데 유독 그 녀석이 눈에 띄었던 것은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능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이어폰을 통해 음파를 출력해 주변 소리를 상쇄시키는 음향기술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귀에 거슬리는 소음은 지워지고 음악소리만 깨끗하게 들린다. 덕분에 번잡한 길거리에서도 마치 방 안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듣기 싫은 소리는 차단하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들려준다는데 끌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골치 아픈 일은 잊고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며 살기를 바랄 것이다. 특히 신경쓸거리가 너무 많은, 그래서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현대인에게 그런 바람은 더욱 절실하다. 음악을 들을 때만이라도 이런 욕구를 채워주는 노이즈 캔슬링은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발명이다.
우리 사회에는 MP3 플레이어 말고도 온갖 것들에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주변만 슬쩍 둘러 봐도 보기 싫은 광경, 듣기 싫은 소식, 쉬쉬하고픈 일들이 넘쳐흐른다. 그 앞에 놓인 우리에게 선택은 두 가지다. 대면하느냐, 고개를 돌리느냐.
요즘 대학생들의 ‘대세’는 속편하게 이어폰을 꽂고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누르는 쪽인 것 같다. 송도캠퍼스, 백양로 프로젝트, 학생회 선거, 미디어법, 세종시….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소음 유발자’들 사이에 선 우리들의 표정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마냥 즐겁다. 우리가 경쾌한 선율에 심취한 사이 도와달라고 조심하라고 주위에서 애써 질러대는 비명들은 공허한 메아리로 산화돼 날아간다.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그 소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는 식의 ‘귀속임’일 뿐이다. 소음은 듣기 불편할지라도 쓸모없지 않다. 그래서 지면은 오늘도 시끄럽다.

김서홍 문화부장 le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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