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키워드는 ‘죽음’이었다.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부터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전 대통령, 마이클 잭슨 등 수많은 사람들의 비보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게다가 신종인플루엔자의 위협까지.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이 하나의 시대적 관심이 되고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웰다잉’열풍이 불고 있다. 지금 현재만을 보고 ‘멋있고 엣지있게 살아보자’는 것이 웰빙이라면, 웰다잉은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며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각 매체들은 앞다투어 웰다잉에 관한 특집 기획을 내 놓고 있으며 웰다잉을 위한 임사체험학교가 속속 문을 열고 있다. 데스 코디네이터(death coordinator), 데스 컨설턴트(death consultant) 등 신종직업도 등장했다.

임사체험학교에서는 유언장 작성, 입관 등 실제 사망자들이 거치는 절차를 체험함으로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이 태어났다는 마음가짐으로 미래에 대한 올바른 계획을 세우도록 돕는다. 데스 코디네이터, 데스 컨설턴트는 말 그대로 죽음준비를 포함한 여생을 관리해주는 직업이다. 이들은 고객의 가용 자산과 생존가능 기간을 파악하여 구체적인 생전 지출비용을 산출해 관리해 주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웰다잉 연극단도 생겼다. 연출을 맡은 인덕대 장두이 교수는 “중요한 테마로 떠오른 웰다잉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하려 했다”며 “직접적으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연극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극단은 7~80대 노인들로 구성돼 있으며 지난 8월부터 웰다잉에 관한 내용의 작품을 공연해왔다. 연극에서는 ‘죽음은 준비해야하는 것’이며 ‘삶에 대한 애착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구민회관 등을 직접 찾아가 공연을 한다. 장 교수는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11월 말까지 공연 할 예정”이라며 “잘 이어진다면 내년에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이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은 지난 9월 국내 대학 최초로 웰다잉 지도자 과정을 개설했다. 불교문화대학원 김영수 학사운영실장은 “점차 고령화 사회가 돼가면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단체가 많이 생겨났는데 정작 지도자가 부족한 현실”이라며 “웰다잉 지도자 과정은 15주 교과과정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지에 대해 진행된다”고 말했다.

사실 서구에서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웰다잉의 개념과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죽음을 준비하자’는 기치가 하나의 캠페인화 돼있어 일반 사람들에게 전혀 생소하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고 임종 때까지 간호와 호스피스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률’을 제정한바 있다. 미국과 대만, 일본에는 호스피스 시설에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인 임종실을 마련하도록 법으로 규정돼있다. 이에 비하면 최근에서야 웰다잉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과 인식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롭 라이너 감독의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는 시한부 판정을 받아 한 병실에 누운 두 명의 노인이 죽음을 앞에 두고 살면서 하고 싶던 일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병으로 인해 이미 한정된 시간 속에서 두 주인공은 차근차근 스스로 삶을 정리하고 마침내 평온하게 눈을 감는다.

연로한 두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와 조금 멀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분명한 사실인 만큼,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고민이 웰다잉의 의의”라는 김 실장의 말처럼 죽음은 삶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죽음과 정직하게 대면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유한성과 그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더 좋은 삶을 살도록 돕는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은 지금, 당신의 버킷리스트엔 무엇이 들어있는가?

김혜진 기자 2every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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