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팀인 '2PM'의 멤버 재범이 한국비하 발언으로 팀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인기 가수로 활동하기 전, 한국 생활이 힘들기만 했던 연습생 시절에 개인 일기장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 하소연하듯 내뱉은 내용이 공개된 이후의 일이다. 그 자체로는 우연적이며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비난의 대상이 된 가수 재범 본인이나 이에 대한 여론재판 그리고 대중의 반응은 사소하지 않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한 개인의 잠꼬대 같은 불평은 현실에서 미국 국적을 가진 인기 가수가 한국을 비하했다는 일로 규정되자마자, 핵폭탄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붙이면 안 되는 사람, 과거 유사한 유승준과 같은 사례로 규정된 것이다. ‘너 죄를 너가 알렸다’는 여론재판이 이루어지면서 보이콧, 축출, 방출 등과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어떤 상황인지, 또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 각기 다른 생각이나 행동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필요나 겨를도 없이 그는 쫓겨났다. 미국에 도착하는 재범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될 때, 대중들은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돌이켜 보기 시작했다. 십자가에서 예수를 매달아 놓고 나서야 자신의 죄를 씻어 보려 했던 그들처럼 말이다.
여론재판의 희생, 광적인 애국주의의 발로, 우리 속의 외국인 배척, 사이버 공간의 위험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력의 부족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스스로가 저지른 곤혹스런 사태를 우아하게 자기 합리화하는 말들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재범이 곧 돌아오게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 마음속의 죄책감을 씻어내기 시작했다. 광기의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냉철한 자각이 절대 필요하다.
재범 사태는 성공이 삶의 목표가 되는 사회에서 모두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좌절된 욕망의 표현이다. 애국심으로 포장된 개인의 욕망의 좌절, 그리고 좌절된 욕망 속에 잠든 공격성의 발로였다. 광기 어린 대중의 반응, 여론재판의 피해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으로 인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모두가 똑같은 성공의 모습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부러워하는 소수는 우리의 피해의식을 자극한다. 누구의 성공이 나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피해의식, 열등감,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의 좌절감을 경험한다. 재범 사태는 인터넷의 문제도, 맹목적 애국주의의 발로도 아닌 우리의 욕망의 좌절, 그리고 사이버 공간을 통한 배출 현상일 뿐이다.
개인의 사소한 욕망의 좌절은 사이버 공간에서 쉽게 분출된다. 이것이 현실의 대중의 마음으로 전환될 때 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특정한 사건이 대중의 마음을 잡을 때엔 일관된 원칙이나 기준이 없다. 단지 소수의 사람에 의해 발화되고, 특정한 이슈에 대해 반응하고 상황의 힘에 의해 만들어질 뿐이다. 대세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대세추종 현상이 일어난다. 다 몰려가면 나도 몰려간다. 누구나 여론재판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
대중의 심리와 움직임은 무엇이 대세인지를 알려 줌과 동시에 인터넷이 일상의 생활공간과 어떻게 다른 지도 잘 보여준다. 누구나 공간의 차이에 따라 갑자기 달라질 수 있다. 특정 공간에서 피해의식을 느끼고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없는 경우 우리는 다른 공간에서 쉽게 폭발한다. 어떻게 하면 유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인가? 쉽지 않을 듯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사이버 공간은 항상 들끓고, 동시에 현실 공간의 언론들이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덤벼들기 때문이다. 항상 희생자의 뼈다귀는 남겨질 것이다. 우리는 단지 희생자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야 할 것이다.

황상민 교수(문과대·발달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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