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애인이 죽었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그 해, 어떤 축구선수보다도 나를 열광케 했던 그 사람, 노무현. 그는 투표권도 없던 열여덟 살에게도 매력적이었다. 내가 사랑한 첫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집권 후기, 그에게 느낀 감정은 배신감에 가까웠다. 사랑한 만큼 기대가 컸는지도 모른다. ‘변심한’ 애인에게 쏟아지던 비난에 공감은 했지만, 씁쓸했다. 그런데 그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죽음이 모든 것을 덮을 순 없지만, 옛 애인의 비보는 가슴을 무너뜨렸다.

그는 누가 뭐래도 비주류의 희망이었고 홀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부숴보려 했던 외로운 투사였다. 지역주의 타파를 비롯해 국민과의 소통, 남북 화해의 노력 등은 값진 시도들이었다.

이런 시도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잦은 시행착오와 정책 실패는 국민들이 등을 돌리게 한 이유가 됐다. 그는 또다시 외로워졌다. 변심한 애인은 같은 짓을 해도 욕은 더 먹기 마련이다. 안 좋은 일은 모두 ‘노무현 때문’이었다. 하도 욕을 먹어서 천수를 누릴 것만 같던 그였다.

안타까움과 원망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도 노무현이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우리를 울게 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외로웠지만 떠나는 길엔 국민들이 있었다. 퇴임 후까지 이어졌던 소통에의 노력이 그를 떠났던 이들을 붙잡았다. ‘말’이 많았던 대통령, 말도 탈도 많았던 대통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말하고자 했던 대통령. 이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의 영결식 노제 장소로 개방됐던 서울 광장은 하루 만에 다시 봉쇄됐다. 광장의 의미를 모르는 현 정권이 노무현을 그립게 한다. “전경버스에 둘러싸여 아늑함을 느낀다는 이도 있다”는 게 현 정부가 민심을 읽는 수준이다. 시민의 힘을 두려워하는 현 정권의 앞날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정치권의 외곽, 거리와 광장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의 힘을 믿었던 노무현의 판단은 옳았다. 죽어서 그는 만인의 연인이 됐다. 세상엔 없지만 마음에 있다.

김문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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