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계속 보도되는 자살 사건. 세부적인 이유는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부정적인 정서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삶을 포기했다. 이것을 ‘고작 그런 이유로 포기하냐’며 비난할 수 없다. 특정한 사건 자체가 자살을 야기했다기보다는 그 사건으로 느낀 주관적 정서가 그를 자살로 몰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경험하는 주관적 감정의 크기를 타인이 어찌 가늠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자살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미래 정서를 맞출 확률 자체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 느낄 절망감은 과장될 수밖에 없다. 논문 「Focalism」에서 저자는 그 이유를 ‘쉽게 떠오르는 사건에 묻혀 그것에 수반돼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 외의 상황에 대해서는 놓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대학입시에 실패한 학생을 생각해보자. 성적표를 받아든 순간에는 재수생활 내내 절망감과 함께 독기를 품고 있을 것만 같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수험생활 외 다른 일들이 전체적인 부정적 정서를 낮추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 외의 상황이 야기하는 정서는 처음의 예측을 어긋나게 한다. 마찬가지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피하고 싶었던 절망감도 어느 정도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부정적인 정서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후에 그것을 초래한 부정적 사건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포식자에게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하는 초식동물은 나중에 포식자를 만났을 때도 가만히 있을 것이고, 죽을 수밖에 없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부정적인 정서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후 일어날 수많은 부정적 사건들에 대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느끼는 패배감은 성공을 위한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때로는 극단적인 절망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을 수 있다. 그럴 땐 한번만 더 되뇌어 보자.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힘들어도 도피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이상민 편집부국장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