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부터 연령차별금지법이 시행됐다. 당장은 모집·채용 단계에서의 차별행위만 금지되었지만 내년 1월 1일부터는 임금, 승진, 해고 등 고용 전 영역으로 확대된다. 모집이나 채용 단계에서 연령차별이 금지되었다는 것은 20대가 취업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대상은 동년배뿐만 아니라 30대 혹은 심지어 40대까지 넓어질 전망이다. 경기 침체로 거의 절망적이다시피 꽉 막혀 있는 고용시장에 버려진 오늘의 20대들에게 이번에 실시되는 연령차별금지법은 그다지 반가운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난 속에서 연령차별금지법은 시기상조일까? 왜 기업이 취업재수생을 꺼려하는지를 고민한다면 정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피진정인들(고용주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했던, 왜 모집단계에서부터 연령제한을 하는지에 대한 논리가 있다. 이 불가피성에 호소하는 논리는 바로 “상명하복식 조직문화에서 고연령자가 신규직원으로 들어올 경우 지휘체계가 흐트러지고 조직의 질서가 바로 서지 않으며, 동일 직급에는 동년배로 채워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 시점의 한국 사회에서는 일견 정당할 수 있지만 이 주장은 기업 입장에서조차 합리적이지 않다. 연령에 의한 위계질서는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런 종류의 차별 사건에 대해서 일관적으로 시정권고를 하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연령차별이 고질적인 사회에서는 두 개의 악순환 고리가 생성된다. 우선 고용관계 속에서 한 개인은 20대에 얻은 잠깐의 혜택을 30대, 40대, 그리고 50대를 거치는 동안 피해로 되갚아야 한다. 젊다는 이유로 채용기회가 높아 취직에는 성공했지만 점차 조직에서 자리를 잃어가다가 이직이나 전직은 꿈도 못 꾸는 상황에 도달하고 급기야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고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고용시장에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죄밖에 없는 취업재수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며, 취업경험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삼수, 사수 이상을 강요받는 또 다른 악순환에 빠져든다.

우리 사회는 고용관계와 고용시장 전체가 연령차별의 악순환 고리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동일한 개인이라도 생애 전 기간을 두고 볼 때 어느 순간에는 차별의 수혜자로 혜택을 주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피해자로 살게 한다는 점에서 연령차별은 고용상황을 왜곡시킨다. 이제는 이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나의 미래가 나이라는 변수만으로 쉽게 예측 가능해진다는 점은 씁쓸하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런 예측가능성을 비극적 확실성이라고 부른다면, 연령차별이 없는 고용시장에서는 능력만을 기준으로 고용상황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긍정적 확실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만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모험도 더 이상 ‘무모하다’고 불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20대에게는 이 취업시 연령차별금지법이 지금까지 얻을 수 있었던 이른바 ‘찰나의 혜택’을 포기하게 하는 못된 법일 수 있지만, 생애 전 기간을 길게 본다면 능력위주의 평가라는 긍정적 확실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공정한 경쟁의 출발점이며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득일 것이다.

이성택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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