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사랑」, 「여행생활자」, 「생활여행자」작가 유성용

‘물은 더럽고 비린내 났다가도 햇볕 쨍쨍한 날이면 쉬리릭 증발해서 구름이 되었다가 시원한 소낙비로 떨어지기도 하지요. 스스로 정화능력이 있는 멋진 녀석입니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 내 몸이 악취나는 하수구를 흘러도 혹은 꽃잎 떨어진 청정 계곡을 흘러도 그저 물건 같이 느껴지곤 한답니다. 물건처럼 살다가 물건처럼 죽을 때까지 세상이 그 물건을 이리저리 굴리고 흘리고 날리고 그러겠지요’

…「생활여행자」중에서

시 쓰고 싶었던 청년, 대학 졸업 후 꽃게잡이 배를 탔다. 배에서 내린 그는 국어교사가 됐다. 4년 뒤 지리산 자락으로 훌쩍 떠났다. 봄이면 꽃보고, 여름이면 물놀이하고, 가을이면 낚시하고, 겨울이면 산에 올랐다. 풍성하고 생기어린 지리산이 내 몸에 잘 맞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번엔 히말라야다. 티베트, 파키스탄 등 히말라야를 1년이 넘도록 돌멩이처럼 굴러다녔다. 문득 떠났던 여행을 문득 끝내고는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성북동 자락에 머물고 있다.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모양새와 같이.

그간의 기록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사랑」, 「여행생활자」, 「생활여행자」에 담았다. ‘여행가’ 또는 ‘작가’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그저 물건처럼 살고 싶다는 그, 유성용을 만났다.

허방에 놓인 삶, 그건 엄연한 생활

사람들은 그의 이력을 보고 왠지 나와는 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에 그는 추호도 다르게 살고 있지 못하다며 한때는 겨울철 보일러비가 제일 큰 걱정거리였던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세속 밖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며, 겨울철 난방비를 걱정하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할 것들을 감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새가 높이 떠서 자유롭게 허공을 가르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새는 태풍 같은 바람소리를 제 홀로 듣는다고. “막상 그곳에 들어가 있으면 아름다움도 아름답지 않음도 없지요. 엄연한 생활이 있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낯섦을 가지고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사람들은 진정 그를 이해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새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그에게 ‘자신이 허락하는 양만큼의 아름다움’을 얻고자 기대했던 것이 아닐까.

다만 그는 자신이 경험주의자는 아니며, 자신에게 다가온 상황들을 그저 극진히 체험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행을 떠난 것 또한 그러했다. 경험을 하기위해 떠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활이 싫어서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여행을 떠날 상황이 다가왔고, 그는 오롯이 이를 받아들인 것뿐이다.

끝내 꿈꾸지 않으려는 꿈

그는 여행기의 마지막 장에서 상처란 치유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애쓴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아, 괜찮아’하고 위로를 보낸다. ‘괜찮아’야만 하는 욕망. 이는 행복강박이다.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현실을 함부로 왜곡하고 위안과 만족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이에 그는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지 않네요’라고 말하며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상처와 상처, 그늘과 그늘이 만나서 빛을 꿈꾸지만 연대하지 말고 그저 그늘이었으면 좋겠어요. 왜 그대로 껴안지 않고 자신의 욕망으로 포섭하려 하는지….” 그늘이 빛을 꿈꿀 때 상황에 대한 왜곡이 발생한다. 그는 왜곡된 인식을 경계하며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어도 상황에 극진히 임하다보면 허공을 밟고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따져 봐도 아무런 근거도, 타당도 없겠죠. 하지만 여기에 충실히 임하다 보면 어느새 허공을 밟고 그 자리에 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허공을 차마 못 밟는 것은 ‘나’에 대한 강박과 애착 때문이죠. 밟고 떨어지면 어때요?” 그에겐 ‘거짓이 거짓이 아니고, 환영이 환영이 아닌 것’이다. 그는 거짓과 환영조차 충실히 체험하고 정성을 들여 껴안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극진히 견딜 뿐 함부로 꿈꾸지 않으려는 그는 ‘희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순창에 ‘희다방’이라고 있어요. 계집희(姬)인고 했는데 아마 바랄희(希)일 것 같아요. 희망다방이겠죠. 희망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희다방에 영희 만나러 갔다가 공연히 숙희 만나서 애 둘 낳고 살다가 이혼하는 이야기.” 그가 보기엔 자신의 희망 속에서 매일매일 자문자답하는 사람들이 너무 쓸쓸하다. 늘 희망을 갖고 마음 먹어 보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는 세상 앞에 절망만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행복에 대한 강박과 어릴 때부터 과도하게 ‘마음의 힘’을 학습 받아온 폐해다. 

자료사진 유성용

나는 다만 고백과 신념을 줄이고

행복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기를 피워 올리지 않는 것’과도 긴밀히 통한다. 그는 “대학 때는 시 열심히 쓰고 싶었어요”라며 자기 안에 갇혀 있었던 시절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시라는 장르가 자기 안에 갇혀서 자신만의 진지함을 계속 피워 올리는 것 같아요.” 그가 보기에 시는 나르시시즘을 증폭시키는 옛날식 진지함이었다. 그는 고흐처럼 거울방에 갇혀 있는 것은 진지함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진지함의 방식을 찾았다. 바로 ‘자문자답에 갇힌 나의 바깥을 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바깥을 보려면 자기를 피워 올려선 안된다고 말한다. 자신을 줄이고 나를 찾으려는 의도를 짐짓 모른 척 할 때 얼핏 나에 대한 기미라도 살짝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블로그, 홈피 등에 어디를 갔고, 무엇을 했는지를 자랑하며 끊임없이 자기를 피워 올린다. 그는 그들에게 ‘나를 줄이면 당신의 환한 바깥이다’고 얘기한다. 고작 체험하고 가는 인생. 나에 대한 관심을 조금 줄이고, 맑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좋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차를 하도 연하게 마시고, 맹물처럼 담박하게 살고 싶기도 해서 그는 자신을 ‘맹물’이라고 했다. 그의 뜻을 잘 아시는 스님 한 분이 ‘孟(맏 맹)’, ‘物(물건 물)’자를 써서 첫 번째 물건인 그대가 물건처럼 구르다 보면 잎 다 떨군 가을, 겨울산이 환히 빛나듯 산천광휘지 않겠느냐고 한시를 지어주셨다. 그래서 그는 물건처럼 살고 싶은 ‘맹물 유성용’이 됐다. 이에 그는 “거대한 욕심이죠. 나도 세속에서 열외될 수 없고, 나로 가득 찬 인간일 뿐이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말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를 줄이고 그저 상황에 충실히 임하려는 마음가짐이다.

함부로 꿈꾸지 않고, 물건처럼 구르는 그대. 그 어느 날 희다방 뒷문을 나서면서 만날 듯도 싶다.

장유희 기자 blooming@yonsei.ac.kr
사진 박선종 기자 ganzina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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