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리굴 문화마을


목장을 만들겠다는 한 산골소년의 꿈이 자라 약 20만평의 거대한 문화마을을 이뤄냈다. 경기도 안성시 비봉산자락 넓은 골짜기에 펼쳐진 ‘너리굴 문화마을’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수도권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이다. 30년 전 임계두 원장이 설립한 너리굴 문화마을은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주고 있다. 꽃 피는 3월 나른한 주말, 너리굴 문화마을을 찾았다.

‘너르디 너른 골’, 너리굴을 마주하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달리길 한 시간. 너리굴 문화마을은 안성터미널에 서 차로 십분 남짓한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어디로 가냐는 택시기사 아저씨의 물음에 “너리굴 문화마을이요”라 하니, 그때부터 기사 아저씨의 마을 자랑이 시작된다. 아저씨는 “안성에서 손꼽히는 자랑거리야”라며 아직 보지도 못한 너리굴의 연혁까지 들려준다.

차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넓게 펼쳐진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리굴’은 ‘너르디 너른 골’이라는 안성 토박이말로, 마을이 위치한 비봉산 등성이의 골짜기를 이른다. 듬성듬성 있는 건물들과 그 뒤로 보이는 잘 뻗은 산새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고, 마을의 넓은 품새는 어느 것이라도 품을 듯했다.
눈길 닿는 대로

너리굴 문화마을에 있는 30채가 넘는 건물들은 모두 목조건물로, 임계두 원장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것이다. 마을 어귀에 있는 한 숙소의 외벽에는 도자기 파편 조각이 장식돼 있다. 이는 도예가 변승훈씨가 군청사기를 이용해 만든 도자기 벽화다.

이 마을의 건물들은 모두 이런 형태를 띤다. 건물에 예술작품이 함께하는 것이다. 임계두 원장이 설계한 건축물에 예술가들의 예술혼이 불어넣어져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

건물을 돌아 나와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니 조그마한 뜰이 보인다. 한복판에는 금속재질의 커다란 조각상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다른 한 켠에는 작품으로 보이는 선풍기 여러 대가 고개를 숙여 졸고 있다. 너리굴 문화마을의 야외에 전시된 작품들은 이렇게 모두 규칙적으로 놓여있지도 않고 부연설명도 없다. 작가의 이름과 제작년도, 그리고 작품과 관련된 정보는 일부러 쓰지 않았다.

금속공예가 이경자씨는 이러한 구성에 대해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마을에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너리굴 예술인’중 한 명이다. 야외의 자연 공간에 설치돼 있는 조각상들은 시간, 계절의 흐름과 같은 자연배경의 변화에 따라 느낌의 진폭도 크다. 따라서 사람들은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예술작품을 찾는 데에 재미가 들려 건물의 뒤편에 솟아있는 커다란 기둥을 가리키며 “저건 어느 분의 작품인가요?”라고 물으니, 임씨는 웃으며 “그건 연료통입니다”고 답했다. 이곳에 오면 사람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예술작품에 노출된다. 금속공예가 이씨는 너리굴 문화마을의 매력을 “넓은 자연을 배경으로 작품을 전시함으로서 작품과 놓이는 공간이 별개가 아닌, 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예술을 일상화시키는 것이 이 마을이 지어진 목표 중 하나다. 

발길 닿는 대로

너리굴 문화마을은 미술관, 박물관, 조각공원 등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공간과 함께 금속공방, 도자기공방, 칠보공예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더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박시설도 갖춰져 있어 도시인들에게 목가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너리굴 문화마을 영업관리부장 임계연씨는 “미술이나 음악, 사진과 같은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각종 모임의 장소로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이색적인 문화공간 중 하나는 바로 임계두 원장이 직접 운영하는 ‘청음실’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LP가 1000장 이상 구비돼 있으며 1억이 넘는 음향장비까지 갖춰져 있다. 미리 신청을 하면 누구나 무료로 원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너리굴 문화마을 입구에 위치한 너리굴 미술관. 개관 이래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잇는 신인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80년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보존된 조각가 류종민씨의 조각공원도 빠질 수 없다. 아기자기한 샛길의 양 옆으로 유 작가의 작품 ‘고곡대위’시리즈와 ‘월인천강’시리즈가 전시돼 있다. 발길닿는 곳 어디에나 문화공간이 팔을 벌려 반기는 이곳이 바로 별천지가 아닐까.

류종민 조각공원에서는 조각가 류종민씨의 조각상들이 보는 이의 발걸음을 잡아끈다.

자연과 함께 시인이 되기

세상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해선 ‘자연’이라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 임 원장이 지닌 삶의 철학이다. 이러한 임 원장의 생각은 마을의 곳곳에 녹아 있다. 목조 건물로 마을을 구성한 것에서부터 돌을 이용해 지은 소박한 돌담길까지, 그는 이곳을 친환경적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애썼다. 건물을 지을 때도 그 자리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을 자르지 않으려고 나무가 있는 부분을 남기고 그 주위를 둘러 건물을 지었다.

또한 이곳 마을에서는 토끼들을 풀어놓고 기른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로 뛰어다니는 토끼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하는 마을의 상징적인 볼거리다. 마을의 뒷산에 있는 ‘사슴목장’에서는 사슴 30마리가 뛰놀고 운동장의 한 켠에 있는 조그만 호수에서는 숭어가 헤엄친다. 이는 사람들이 생명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임 원장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임 원장은 “어린시절을 자연과 함께 보내지 않고서는 시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시인은 반드시 시를 쓰는 작가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모든 숨 붙은 것들, 인간을 포함해 곤충 하나, 풀잎 하나까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시인인 것이다.

목가적 공간, 그리고 예술인촌

임 원장이 어릴 적부터 꿈꿨던 목장은 ‘너리굴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됐다. 그는 동물을 키우는 목장이 아닌, 사람을 키우는 목장을 만들어냈다. 엄마정(停), 엄마목장 등 마을 안에 있는 여러 곳들에는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마치 너리굴 마을이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품었으면 하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는 듯하다.

임 원장은 너리굴 문화마을이 “예술인들이 경제적인 속박 없이 자유롭게 모여서 독자적인 활동도 하고 서로 교류도 할 수 있는 예술인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시인들에게는 목가적인 휴식처, 아이들에게는 자연 학습의 장, 그리고 예술가에게는 창작활동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너리굴 마을처럼 문화적으로 특성화된 공간이 많지 않다. 경제적인 면에서 이윤을 얻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여러 기관들이 건설에 협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임 원장은 “이런 문화예술 공간이 다양하게 늘어나서 서로 특화되고 상호보완적으로 활성화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공간’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너리굴 문화마을은 이런 공간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마음이 담긴 곳이다. 이른 봄에 찾은 안성 비봉산 기슭의 ‘너리굴’에서는 뒤뜰로 뛰쳐나온 조각상들처럼, 자연과 예술이 포근하게 껴안고 있었다.

 

박소영 기자 thdud0919@yonsei.ac.kr
사진 추유진 기자 babyazaz@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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