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e 전 담당PD 김진혁씨를 만나다


1초. 우주의 시간 150억년을 1년으로 축소할 때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간 시간.
17년. 영국 농림부 장관 존 검머가 TV에서 쇠고기의 안전성을 역설한 후 
          친구의 딸이 인간 광우병으로 사망하는 걸 지켜보기까지 걸린 시간.
3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복직 투쟁을 벌여온 시간.
       그리고 김진혁 PD가 ‘지식채널e’와 함께 했던 시간.

리듬 있게 흘러가는 화면, 담담하게 떠오르는 자막, 감정의 기복에 맞춰 튀어 오르는 음악, 그리고 충격과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어두워지는 화면. 누구나 한번쯤은 본 적 있을 EBS 지식채널e의 5분간이다.

「1초」로 시작해 「17년 후」를 거쳐 「3년」으로 끝났다. 무슨 소린가 하니, EBS 김진혁 PD가 지식채널e에서 만들어 온 프로그램 제목들의 발자취다. 지식채널e가 탄생할 때부터 3년간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그는 지난 2008년 8월 갑작스럽게 어린이·청소년팀으로 발령받았다. 광우병을 다룬 「17년 후」편에 대한 방송금지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라 ‘보복성 인사’라는 논란이 일었다. 김 PD의 복직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언론의 인터뷰도 줄을 이었지만, 결국 인사조치는 번복되지 않았다.

이제는 언론 보도도 뜸해지고 그는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그가 지식채널e를 떠난 지 반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 EBS 사옥에서 김진혁 PD를 만났다.

지식(知識)에서 지식(智識)으로

EBS 지식채널e는 지난 2005년 9월, 캐나다 온타리오TV의 SB(Station Break,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의 공백)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 탄생했다. 프로그램의 처음 의도는 ‘지식채널’이라는 EBS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짧은 지식(知識)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그런데 방송이 나가면서 점차 메시지를 전달하는 쪽으로 이동했어요.” 제작자가 팩트(Fact)를 던지면 그 속에서 시청자가 나름의 의미를 얻어가는 편들이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제작진과 시청자 서로에게 좋겠다 싶었다고 한다. 이렇게 프로그램 성격이 고정되기까지가 3달. 이후 지식채널e는 짧은 길이 때문에 프로그램 노출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료 다시보기 서비스와 블로그 ‘펌질’에 힘입어 시청자들을 끌어당겼다.

지식채널e는 때론 신선한 소재로, 때론 상식을 깨는 접근법으로 보는 이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그는 아이디어회의가 유달리 유연하게 이뤄졌던 덕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편의 30~40% 정도가 직관이나 스쳐지나가는 의외성을 바탕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하니 놀랍다.

그는 동대문운동장으로 쫓겨난 청계천 노점상 철거민들을 다뤘던 「잊혀진 대한민국 I - 철거민」편의 제작과정을 들려줬다. 순간적인 영감으로 탄생한 ‘걸작’의 예였다. 그는 처음부터 철거민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밤에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는데, 애국가가 흘러나왔더란다. 풀밭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땀을 훔치며 웃는 노동자, 화려한 무궁화 꽃밭… 문득 ‘왜 저렇게 밝고 즐거울까? 저런 화면대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이 애국가 배경으로 쓰이면 어떨까?’하는 역발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애국가의 새 배경이 될 ‘소외된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아낸 이들이 바로 청계천 철거민이었다.

만일 제작진이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제작방식을 택했더라면 지금의 지식채널e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식채널e에서 시청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은 빈틈없는 논리가 아니라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비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김진혁 PD의 ‘두 번째’ e야기

지식채널e 팀에서 이탈한 직후 그는 블로그 ‘김진혁pd의 e야기(http://blog.daum.net/jisike)’를 개설했다. 더 이상 직접 관여할 수 없게 된 지식채널e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블로그 운영이라고 생각했고, 개인적으로도 지식채널e 게시판에서 이뤄지던 시청자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청자와 지식채널e 사이에서 제 블로그가 ‘소통의 끈’역할을 하길 바랐어요. 프로그램에서 미처 못 다한 이야기, 프로그램을 하면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도 많았고요.” 그는 결과적으로 바랐던 바를 충분히 이뤘다. “블로그 만들길 잘했어요. 꾸준히 잊지 않고 방문해주시는 분들을 볼 때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블로그에 그분들이 바라는 ‘니즈(Needs)’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의 블로그에는 파랗게 날이 선 글이 수두룩하다. 지식채널e가 아픈 곳을 은근히 문질러댔다면, 그의 블로그는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찌르고 딱지를 잡아 뜯는다.

“사람들에겐 괴롭고 껄끄러워서 말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누군가가 나서서 까발려주길 바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가 3년 동안 그런 ‘불편한 사실들’을 인정하고 까발리면서 깨달은 점이라고 한다. 지식채널e는, 그리고 그의 블로그는 바로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 해봐야 소용없어요. 사람이 변해야죠. 조선일보가 독자들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런 독자들이 조선일보를 원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식채널e가 사람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일만한 ‘니즈’를 지식채널e가 잡아낸 거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그는 학생 때 ‘아주 평범한 자유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연애를 위해 운동권도 영화동아리도 포기했다고 한다. 제대하고 나니 IMF가 터졌다. 새로 직원을 뽑는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모 학습지회사 사무직으로 10개월 근무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2년 뒤 그는 EBS에 입사한다.

입사 후 몇 년 동안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았다. 그 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지식채널e를 연출할 때 가졌던 철학의 밑바탕이 됐다. 그 중에서도 사정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ARS 성금을 모금하는 ‘효도우미 0700’의 제작에 참여한 경험은 특별했다. “그때까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소외’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어요.” 김 PD가 지식채널e를 관통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바로 그 ‘소외’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그가 당하고 있을 바로 그 ‘소외’이기도 하다.

… 소외는,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소외는 우리의 의식 그 어디엔가 ‘휴지통’이라는 폴더가 있고, 그 폴더에 대략 1달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모조리 집어넣어 삭제해 버리는 그 편리하고도 신기한 시스템이 바로 ‘소외’다 … (‘김진혁pd의 e야기’발췌)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상복도 많았던 2008년이었지만, 그는 그 이전의 3년이 자신에겐 더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상처도 받았지만 평생 남는 상처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은 어찌할 수가 없다며 그 아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난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라고 했다.

인사이동 후 그가 맡은 프로그램은 ‘원더풀 사이언스’라는 50분짜리 과학 다큐멘터리였다. 이번 봄 개편 때 그는 다시 ‘과학실험-사이펀’이라는 프로그램에 배정됐다. 3년간 쉴 새 없이 ‘메시지’를 뱉어 온 그에게 ‘착한’ 교양 다큐멘터리는 답답하지 않을까. 김 PD는 ‘쿨’했다. “모든 다큐멘터리는 나름대로의 메시지가 있어요. 다만 지식채널e는 그 메시지를 좀 더 직접적으로 전달했다는 것뿐이죠. 전 방송일 자체를 워낙 즐기기 때문에 특별히 지금 하는 일에 아쉬움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식채널e에 대한 욕심은 더 없는 걸까? “물론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 가고 싶죠. 가서, 6개월 정도만 잘 마무리하고 나오고 싶네요.”

김진혁 PD는 사람들이 자신과 지식채널e를 동일시하지 않길 바란다. 그의 말대로 ‘김진혁의 지식채널e’라는 말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줄곧 ‘지식채널e의 김진혁’이다.

김서홍 기자 leh@yonsei.ac.kr
사진 구민정 기자 so_coo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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