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은 예술과 과학을 전혀 다른 분야로 생각하고 각각 다른 방법을 통해 가르친다. 덕분에 과학자들은 오로지 ‘계산’과 ‘실험’안에서만 사고하고, 예술가들은 ‘예술’만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예술과 과학이 지금처럼 분리된 개념이라면 아르망 트루소의 말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과 과학이 연결된 개념은 아닐까? 그 역사를 되짚어보자.

시작과 갈라짐의 징조

과거에는 지금처럼 예술과 과학이 각기 다른 개념으로 생각되지 않았고 지금보다 넓은 의미를 갖고 있었다. 예술의 개념은 지금의 미술작품 이외에도 장인이 만들어낸 제작품과 그 솜씨까지도 포함했으며, 과학의 개념은 고대철학에 기반을 둔 전반적인 자연의 원리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예술과 과학은 각자 다른 단어로 표현되지 않고 ‘테크네(Techne)’ 라는 개념으로 인식됐다.

영산대 학부대학 김용석 교수는 테크네에 대해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테크네는 ‘지식’과 ‘솜씨’를 통합하는 개념이었다”며 “예술과 과학이 연계되는 경향의 고전적 형태”라고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테크네의 본질은 작품을 이해하고, 그 배후에 있는 기법과 이론을 연구하고, 창작 자체가 아닌 그것을 만든 사람 안에 있는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고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예술과 과학은 이음동의어였다.

하지만 테크네는 플라톤의 ‘미메시스 이론’이 등장하면서부터 그 정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메시스 이론의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다’라는 명제와  ‘과학이 자연의 법칙을 탐구한다’는 명제가 충돌했던 것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이 과연 자연의 진리나 법칙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과학과 예술 사이의 갈등을 부추겼다. 예술과 과학은 이때부터 분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는 테크네라는 개념 아래 하나의 의미로 존재했다.

등을 돌린 예술과 과학

르네상스 시기는 예술과 과학이 공생했던 최고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예술가들은 직접 이뤄낸 과학적 결과를 예술 작업에 활용했다. 원근법의 도입이나 인체해부의 미화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의 비례를 건물과 기념물들의 치수를 결정하는데 사용했을 뿐더러 그 비율을 우주에 대입시켜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현재 과학자로 잘 알려진 오일러나 코페르니쿠스 같은 사람들 역시 음악과 시각예술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지금의 시점에서 팔방미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당시에는 예술가의 기본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중세에 접어들면서, 테크네라는 단어의 뜻이 예술과 기술이라는 단어로 갈리게 됐다. 근대의 사람들은 우주의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기계론적인 개념을 선호했고, 예술영역으로의 관심은 멀어졌다. 더불어 과학은 연구마다 상이한 방법과 모델을 차용하며 전문적으로 발전했기에 예술가들은 과학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통칭 예술가로 불리던 그들이 분열의 조짐을 띄기 시작한 것이다. 김 교수는 “결국 19세기 초에 이르러 예술에서 과학이란 개념이 따로 분리돼 정립되었다”며 이때부터 이들이 다르게 불리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학은 다시 예술의 꽃을 피운다

이런 역사 때문에, 예술과 과학은 지금과 같이 나뉘어진 양상을 보이게 됐다. 하지만 이런 분열을 넘어 현재 예술과 과학은 다시 ‘테크네’의 원형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고 있다. 예술이 디지털과학과 기술쪽으로 손을 뻗치기 시작하면서 광학과 전자학이 예술과의 연결고리를 얻게 됐다. 건축기술은 이제 실용성을 넘어서 아름다움까지 추구하며 예술의 영역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예술과학도시’라는 칭호를 얻은 발렌시아에서는 도시 전체를 예술적으로 복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예술과 과학의 거리는 아직 멀다. 하지만 예술과 과학 모두 기술이라는 연결점을 갖고 있기에 이들이 더욱 멀어질 것 같지는 않다. 예술과 과학이 함께 열어갈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박기범 기자 ask_walker@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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