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여자아이들은 위인으로 신사임당을 꼽았다. 신사임당은 정말 현모양처일까. 율곡 이이의 어머니, 현모양처이자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유일무이한 모범적 여성으로 칭송되는 그녀의 본명은 신인선. 여성의 몸으로 붓을 만질 수 없었던 그 시절에도 조충도 등의 그림을 즐겨 그리며 자유로운 예술혼을 불태우던 그녀는 결혼해서도 시아버지에게 되바라지게 바른 말을 잘 하며, 무능한 남편에게 따박따박 주장을 펼치기도 했으며, 남편의 첩질에 대해 저항했던, 당시로서는 ‘막돼먹은’ 며느리이자 아내다. 그녀를 고분고분한 현모양처로 둔갑시킨 것은 독재정권이었다. 일제 식민시대에 조선으로 건너온 ‘신여성 교육(통제) 방법’ 이었던 ‘양처현모(良妻賢母)’ 개념이 반세기 후 애꿎은 신사임당에게 덧씌워져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지난 해, 5만원권 화폐 인물 선정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리 나라 화폐에는 여성 인물이 없으므로 이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그런데 어떤 여성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여성계에서는 진취적 여성상인 유관순, 소서노 등을 꼽았으나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으로 결정되면서 진보적 취지에 반하는 ‘퇴행적’ 결과에 여성계는 분노했다.

신사임당에 대한 찬반 설전이 펼쳐졌다. 신사임당은 현모양처 이미지이므로 옳지 않다는 여성계를 위시한 반대론과, 개중에 신사임당이 현모양처, 예술성 등 긍정적 업적이 있다는 찬성론이 대치점에 서있다. 또 하나의 주장으로는, 신사임당은 위인이라고 할 만 한 업적이 없으니 화폐 인물로 적절치 않다는 것인데 이 주장은 결과적으로 적당한 여성 인물이 없으므로 남성 인물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여성 인물 화폐’ 자체를 부정하는 결론으로 닿기 쉽기에 경계되어야 한다.

여성 화폐 인물의 등장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불과 백 년 전의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웠듯, 여성의 얼굴이 화폐 도안에 진입하는 것조차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진출은 언제나 투쟁을 동반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현모양처 이미지로 점철된 신사임당을 그대로 내세운 지금의 보수적인 관행에 대해서는 비판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현모양처 신드롬’은 여성의 역할을 아내와 어머니로 가두었던 성차별 역사에 대한 재탕일 뿐이며 영구 폐기되어야 할 인습이다. 더불어 신사임당을 의도적으로 부풀리는 것도, 깎아내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가장 두려운 지적은, 여성 위인이 ‘없다’ 라고 하는 오해다. 없는 것이 아니라 인정받지 못했고, 또한 싹부터 잘라져 자라지 못한 것일테다. 그렇게 단두당한 여성들의 피어린 역사를 가려두고, ‘여성 위인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다. 무엇보다도 여성 화폐 인물 선정과 관련한 작금의 논쟁을 신사임당 찬성 반대의 성격으로 만든 상황이 안타깝다. 중요한 것은 여성 화폐 인물 선정을 둘러싼 역사적 의미 앞에 투명하게 서는 것과, 진실된 눈으로 왜곡된 여성들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 성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이 논쟁은 전환돼야 한다.

앞으로 유통될 5만원권에 그려진 신사임당의 이미지로부터 미래 세대들이 얻어야 할 것은 현모양처 신드롬이 아니라, 여성의 삶에 대한 관심이어야 한다. 여성의 역사 발굴 작업, 여성 인물 바로세우기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되어야 하며 더불어 신사임당에 대한 재해석도 이뤄져야 한다.

옆에 앉은 남자 짝궁이 장래희망 란에 ‘대통령’, ‘과학자’라고 적을 때, 수줍게 ‘현모양처’를 적어넣는 여자아이들에게 이제는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할 때다.

김황수진 서울여성회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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