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동결됐지만 우리대학교 등록금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부담감이 바로 학업 성실도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학 후 어영부영하다보면 어느새 한 학기가 지나있고, 한 학년이 더 올라가 있다. 내가 새내기 때는 이를 당시 필독서였던 헤르만 헤세의『유리알 유희』에 빗대어 ‘5백만의 유희’라고 자조(自嘲)했었다.

5백만원은 등록금의 대략적인 액수이고, 유희는 말 그대로 놀기만 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것과, 그럼에도 허무하게 학기를 보낸 자신에 대한 조소가 담겨 있다.

이와 같이 등록금으로 대학생활 전반을 상징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경제’라는 분야가 대학생에게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IMF 시절 주변 어른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던 우리세대에게 직업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은 적잖은 공포다. 그리고 그 당시 어른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그것은 지금 대학생에게는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다.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돼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목격했던 비극이 자신에게 닥쳐올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취업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로운 대학생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외면하기 위한 방법 중에 대표적인 것이 학점관리이다. 성적표에 찍히는 학점은 5백만원이란 등록금 금액만큼 명확해서 대학생들에게 꽤나 큰 위안을 주는 것 같다. 학과공부를 하는 것이 왜 나쁘겠냐마는, 문제는 아무리 하고 싶었던 일이라도 학점관리에 방해된다면 일단 보류한다는 것이다. 대학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놓쳐도 말이다.

적당한 불안감은 문제를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본래의 적응적 가치마저 잃게 된다.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 몰두했던 학점만큼 자신도 성장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학점처럼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까짓것, 그것이 유희라고 불려도 좋다.

이상민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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