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용어에 사석(捨石)이라는 말이 있다. 사석(捨石)은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희생시킨 돌 혹은 그 돌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몇 개의 돌을 희생해 대국을 유리하게 이끄는 고도의 전법이다. 상대방에게 잡혀 죽은 돌(死石)과 음은 같지만 그저 죽어있는 돌은 아니다. 사석(捨石)은 ‘전략’이다. 단순히 버린 돌이 아닌 것이다.

제갈공명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벤 것은 사석(捨石)의 전략이었다. 공정성이라는 대의를 위해 가장 아끼던 장수를 죽여가면서 국가기강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세태를 보면 사석(捨石)의 지혜가 아쉽다.

정권 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내각과 참모진으로 사용했다. 장관 내정자 15명 중 7명, 청와대 1기 수석 9명중 5명이 인수위 출신이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현재 1·19개각 등을 통해 기용된 장관급 인사 6명 중 인수위 출신은 5명이나 된다. 인수위 출신 상당수가 요직에서 중도하차한 뒤에도 재기용한 경우가 많아 국민들의 질타를 받았다. 이 대통령이 ‘아까운 사람’이라던 용산참사의 주역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퇴진이 늦어진 것도 사석(捨石)의 결단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바둑을 둘 때 전체를 보기보다 사석(死石) 몇 개에 연연한다면 이는 분명히 초보다. 상대방의 돌을 따먹는 것은 통쾌하지만 내 돌이 먹히는 것은 불쾌하다. 그러나 돌 몇 개 지켜보려고 애쓰다가는 큰 판을 읽을 수 없다.

용산참사와 무리한 입법추진을 거치면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1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정책에 대한 불신, 소통 부족으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내세운 정책을 무리하게 고수하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설 줄도 알아야 했다. 자신이 아끼는 참모일지라도 잘못이 있다면 단호하게 끊어내야 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그것이 옳다면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큰 판을 읽는 사석(捨石)의 지혜다.

김문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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