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아트센터 관람기

지난 2006년 1월, 백남준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뒤로하고 초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결코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백남준 아트센터’로 지난 10월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에 ‘백남준 아트센터’ 개관이 확정된 후 백남준 스스로 이곳을 ‘백남준이 영원히 사는 집’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백남준 아트센터 전경

백남준 아트센터는 경기도 용인의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 위치한다. 버스에서 내려 한적한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보면 검은색 그랜드피아노의 형상을 한 웅장한 건물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백남준의 작품을 비롯해 그와 영향을 주고받았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맞은편에 금붕어가 헤엄치는 어항 안으로 ‘지지직’거리는 비디오 화면들이 보인다. 백남준은 살아생전 “종이 없는 세상을 위한 확장된 교육”을 해야 한다며 비디오가 종이보다 우월한 매체라고 주장했다. 건물 내부는 이런 그의 생각을 반영이라도 하듯 영상과 화면이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개관기념행사로 오는 2월 5일까지 ‘나우 점프(NOW JUMP)’라는 타이틀을 걸고 ‘백남준페스티벌’을 연다. ‘나우 점프’는 이솝 우화의 한 구절인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지금 뛰어라!(Hic Rhodus, hic saltus!)”에서 차용한 제목으로 관념이 아닌 예술적 실행과 혁신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다섯 개의 스테이션으로 나눠 다양한 각도로 백남준을 조명한다. 각각의 스테이션은 백남준 아트센터와 신갈고등학교 체육관, 지앤 아트 스페이스에서 진행된다. 이 중 ‘스테이션1’과 ‘스테이션2’는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

백남준 페스티벌의 타이틀

백남준 아트센터의 1층은 모두 ‘스테이션1’으로, 백남준의 삶과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백남준은 생전에 작품을 통해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미국사회에 성에 대한 금기가 있음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리고 지난 1967년, 백남준은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 함께 음악에 맞춰 ‘오페라 섹스트로닉’ 퍼포먼스 진행 중 경찰에 연행된다. 이 사건으로 백남준의 이름 앞에는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수식어가 추가됐다. 1층에는 이와 관련한 그의 작품과 그와 함께 영향을 주고받았던 마르셸 뒤샹, 존 케이지, 플럭서스 멤버 등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모퉁이에는 한쪽 벽면 전체가 화면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화면에는 돼지우리 앞에 피아노를 가져다놓고 밀가루반죽을 던지며 천연덕스럽게 연주하는 백남준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옆에는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는 그렇게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말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스테이션1에 전시중인 <엘레펀트 카트>, 백남준 작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에서는 ‘스테이션2’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스테이션2’는 백남준의 행위예술 이후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퍼포먼스를 조망한다. 여기에서는 카세트테이프가 날아다니는가 하면 어두컴컴한 방안에 한 사람이 높은 곳에 뚫린 구멍에 몸이 낀 채 손을 휘두르기도 한다. 하나의 이미지로서 말을 건네는 이런 작품들은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일맥상통한다.

백남준 아트센터의 건물 내부는 마치 미로 같았던 백남준의 인생과 같이 하나의 미로처럼 짜여 있다. 특별한 안내판도, 관람순서도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같은 곳을 계속 마주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눈에 익은 작품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은 뇌리에 또렷하게 박히게 된다.

1층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던 광운대 양예설(신방·05)씨는 “대체로 작품들이 어렵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동시대 예술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실험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작품의 해석에 치우치다 보면 관람이 힘들어질 수 있다. 차라리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끼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백남준의 작품을 쫓는 데에 있어서는 더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가 떠난 지 2년 후 찾은 ‘백남준의 집’에는 피아노를 부수고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던 백남준이 ‘작품’이라는 다른 몸을 갖고 살아있었다. 백남준아트센터를 관람하는 데에 있어 그의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그곳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느낄 ‘오감’만 살아있다면….

박소영 기자  thdud0919@
사진 박선종 기자 ganzinam@

자료사진 백남준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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