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보다가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다. 김홍도에게 붓을 하나 건네며 정조 임금이 하는 말이다. “세손 시절 대신들 앞에 처음으로 나아가게 되었을 때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아버님은 이 붓을 ‘괜찮다 붓’이라 하셨네. 이 붓만 있으면 나는 괜찮다, 대신들이 까다로운 질문을 한다 해도 이 붓이 있으니 나는 괜찮다, 나는 응당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고민 많은 20대들에게 한 자루씩 꼭 쥐어주고 싶은, 그야말로 'MUST HAVE'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대학가는 어깨를 웅크린 청춘들로 가득하다. 살인적인 물가와 등록금의 서슬에 질려, 군대로 쫓기고 졸업을 서두른다. 취업을 위해 학점에 목을 매고, 고시 서적에 파묻혀 도서관에 핀 한 떨기 곰팡이로 진화(?)하는 모습들은 이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대의 특권이라던 방황은 커녕 숨 돌릴 시간조차 없다.
아직 세상에 맞설 열정이 남아있는 청춘들은 그래도 낫다. 문제는 지치고 낙담한 청춘들이다. 이들에게는 각박한 현실보다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근성이 없다”, “나약하다”고 일소하며 보내는 차가운 시선들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 세상의 독설에 넌덜머리가 난 몇몇은 은둔형 외톨이가 됐고, 몇몇은 아까운 삶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코피로 욕조를 가득 채울 때까지!’ 같은 전투적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우리는 ‘괜찮다'’ 말 한마디가 필요할 뿐이다.
죽은 고구마벌레 만큼이나 보잘 것 없는 나지만, 감히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방구석에서 삼 일 내내 컴퓨터만 한 인생이라도 괜찮다’, ‘학점이 서부에서 쌍권총 장사를 할 정도라도 괜찮다’, ‘죽어라 공부했는데 죽어라 떨어지기만 한 고시생이라도 괜찮다’고, ‘잘했다’고, ‘장하다’고 어깨를 뚜덕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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