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끊임없는 괴담이 우리 사회를 흔들었다. 「식코」로 시작된 건강보험민영화는 뜬금없이 맹장수술비를 300만원으로 올리더니 급기야는 광우병 괴담으로 연결돼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건보민영화 괴담은 의료선진화와 같은 개혁 정책의 발목을 잡아 노 정부의 의료정책을 후퇴시켜버렸다. 자동차나 전자와 같은 제조업은 자동화로 고용없는 성장이 이뤄지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이태백’이 수두룩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하여 고용효과가 높은 의료서비스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노무현 정부에서 의료선진화가 논의되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논의되었던 의료선진화에서는 요양기관(보험환자를 보는 의료기관을 지칭) 계약제, 영리법인병원, 병원경영지원회사 등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현 정부는「식코」영화 한편에 주눅이 들어 대부분의 사회보험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요양기관계약제에 대한 논의조차 스스로 포기하여 노무현 정부보다 후퇴한지 오래이다. 미국 영화「식코」로 재미 본 단체들은 이제 이명박 정부가 시도하려는 의료선진화와 관련되는 정책들은 무엇이던지 건보민영화나 의료민영화로 낙인찍어 버리면 그것으로 정책 추진이 중단되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 영화「식코」는 국민의 20%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미국의 현실을 풍자하였을 따름이다. 모든 국민을 건강보험에 강제로 가입시켜 건강보험수가를 적용하는 우리나라에서는「식코」와 같은 일이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
  사회보험방식의 건강보험은 의료서비스를 공공재로 간주한 바탕위에서 성립된다. 의료가 공공재로 취급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정부가 건강보험공단을 설립하여 건강보험을 운영하면서 의료기관 운영까지 건강보험공단이 맡아 하는 것은 효율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민간의료기관과 요양기관계약을 통하여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의료가 공공재라는 것은 의료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식한데 따른 규범적 판단이지 실증적인 판단은 아니다. 즉 공공재는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용부담여부에 따른 비배제성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의료는 소비가 경합적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해외환자 유치를 반대하였는데, 그 이유를 보면 해외 환자들을 많이 치료하면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의료이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의료는 소비가 경합적이라 공공재가 될 수 없음을 인권위가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의료가 경제재인데도 불구하고 규범적 판단에 따라 공공재로 간주하여 사회보험을 실시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보험 국가들은 의료의 경제재 영역을 인정하여 모든 의료기관이 강제로 보험환자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방식으로 희망하지 않는 병원은 보험환자를 보지 않고 전액 자비부담환자를 보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요양기관 계약제이며, 영국과 같이 국민의 세금으로 의료를 보장하는 국가도 전액 자비부담병원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보다 전국민 의료보장을 약 6년 늦게 실천한 대만도 요양기관계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계약제를 실시하면 돈이 많은 사람들은 건강보험료는 건보공단에 내고 비계약병원을 자비 부담으로 이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건보재정을 다소 절약할 수 있어 보장성을 높이는데 사용 가능하다. 그리고 비계약병원은 건강보험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외국 환자들을 많이 유치하여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새로운 고용창출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싱가포르가 바로 이러한 전략으로 해외환자들을 유치하여 의료를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식코」관람을 권장한 단체에서는 교묘하게 요양기관 계약제를 건강보험 계약제로 둔갑시켜, 돈있는 사람들은 건강보험과 계약하지 않고 민영의료보험과 계약하여 건강보험민영화나 의료민영화라는 말도 안 되는 괴담을 퍼뜨렸다.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을 민영화시켜 얻게 될 국가적 이점이나 정권 차원의 이점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민영화시킬 것인가? 건보민영화 논의는 괴담 이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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