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및 박물관 가맹점 드물지만, 정작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아

문화란 말은 본래 포괄적이다. 사전은 문화가 의식주를 비롯해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을 반영하는 것인지 문화상품권의 사용범위도 포괄적이다. 요즘 문화상품권은 서점, 극장, 음반점, 공연장 뿐 아니라 놀이공원, 문구점, 음식점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도 문화상품권의 입지는 넓다. 각종 포털, 커뮤니티, 파일공유 사이트와 일부 게임, 교육, 쇼핑 사이트가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다. 현재 문화상품권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주)한국문화진흥은 전국 2만개 이상의 오프라인 가맹점과 500여개의 온라인 가맹점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상품권으로 유니세프에 기부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문화상품권은 ‘(주)한국문화진흥’의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설명처럼 ‘문화가 있는 곳 어디서나 사용되는’ 상품권일까?

 

 ㅁ씨는 예술의전당 내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한 기획전에서 문화상품권으로 입장권을 결제하려다 거절당했다. 이전에 ㅁ씨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봤을 때는 문화상품권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예술의전당에서 누릴 수 있는 각종 문화 활동 중 유독 미술관만이 문화상품권 사용범위에서 벗어난다. 다른 미술관들도 사정은 같다. 전국 32개 미술관 중 매표소에서 문화상품권을 받는 곳은 없다. 국ㆍ공립미술관이나 비교적 큰 규모의 유명 미술관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문화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미술이란 점을 생각하면 의아스럽다. 박물관들도 미술관과 비슷한 방침을 취한다. ‘전시회’는 문화상품권으로 관람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문화상품권을 살펴보면 도서ㆍ영화ㆍ음반ㆍ공연ㆍ인터넷이라고 적혀있지만 ‘전시’라는 글자는 나와 있지 않다. ‘(주)한국문화진흥’이 운영하는 사이트 ‘컬쳐랜드(http://www.cultureland.co.kr)’의 가맹점 검색 코너를 봐도 업종 분류 항목에 전시 혹은 미술관/박물관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은 문화상품권이 워낙 많은 장소에서 사용되고, 특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문화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가맹점은 가맹여부를 따로 표시해놓지 않는다. 소비자로서는 직접 홈페이지를 찾아 사용처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의 가맹점 목록을 확인해도 의문점은 남는다. ‘(주)한국문화진흥’ 홈페이지의 가맹점 목록 중 공연장 항목을 보면 국립중앙박물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호암미술관이 사용처로 올라와 있다. 그러나 이들 미술관/박물관 측은 문화상품권으로 입장권을 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 등에서 열리는 공연과 문화상품점에서만 문화상품권을 쓸 수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도 상품점에서만 문화상품권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처럼 미술관에서만 문화상품권을 쓸 수 없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그럼에도 가맹점 목록에 이런 세부사항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소비자들의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미술관/박물관이 입장료 결제수단으로 문화상품권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계자들은 대개 ‘금액문제’를 언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대부분의 전시회 입장료가 무료이거나 저렴하기 때문에 잔액을 환급할 수 없고 정산의 어려움이 있어 문화상품권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 역시 “상설전의 경우 무료이고 현재 열리는 특별전도 입장료가 2천원이라 상품권 사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잔액은 구매대금이 문화상품권 금액의 80%를 넘어야 환급된다.

그러나 해외 소장 작품 및 유명작품을 대여해 일정기간 전시하는 소위 ‘블록버스터 전시회’의 입장료는 보통 5천원을 훌쩍 넘는다. 한가람 디자인미술관과 한가람미술관이 올해 열었던 전시회 3개의 성인입장료는 각각 1만2천원, 1만4천원, 1만2천원에 달했다. 이런 전시회에서조차 문화상품권 이용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미술관은 문화상품권 관련방침을 모든 전시회에 일괄적으로 적용한다. “전시회마다 다르다”고 밝히는 덕수궁 미술관과 한가람 미술관도 최근의 대형 전시회는 문화상품권을 받지 않으며 이를 받은 전시회가 어떤 것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박물관의 경우 입장료 5천원이 넘는 전시회를 열 때가 드물지만 값이 나가는 전시회에서도 문화상품권 결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미술관/박물관에서 문화상품권을 쓸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들이 더러 나오지만, 이에 달린 답변들의 내용도 제각기 다르다. 최전승(사학/식품ㆍ04)씨는 “문화상품권이니까 모든 곳은 아니더라도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가맹점으로 인정돼 사용할 수 있는 줄로만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중앙대학교 김환히(의류ㆍ08)씨는 “문화상품권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며 “모든 미술관, 박물관은 아니더라도 일부 가맹점이 생겨서 문화상품권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지원 기자 kaleidoscope@
일러스트 남아름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