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미얀마에서는 허리케인으로 인해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허리케인 탓만은 아니었다. 미얀마 정부가 허리케인 피해지역에 대한 경보를 극소수에게만 전달하고 나머지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피해가 적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켰던 것이다. 결국 허리케인 경보를 제대로 받지 못한 주민들은 앉은 자리에서 태풍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었다. 바다 건너에서 이런 소식을 들은 우리는 아마 정부의 이런 행동이 지독하게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국민은 그런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것이며,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정부가 과연 유지될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봐도 정부의 행동은 정부에게나 국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이 꼭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미얀마 정부는 군정이다. 즉, 처음부터 국민의 지지와는 상관없이 집권했고, 지금도 국민의 지지와는 상관없이 권력을 유지하는 집단이다. 그 전에 이미 여러 번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대해 피의 탄압으로 답한 정부다. 따라서 더 떨어질 지지율도 없고, 국민들의 비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독재를 계속하고 있다. 즉, 미얀마 정부는 지지율이나 호감에 있어서는 더 잃을 것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번 사건은 정부의 권력이나 신뢰도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미얀마 정부가 재난에 관한 정보를 몰라서 전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극소수에게만 전달했기 때문이다. 미얀마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언론통제가 심한 미얀마에서는 나라 안팎의 정보를 자유롭게 접할 통로가 거의 없다. 정부는 국민들 중 일부에게만 진짜 정보를 주고 나머지에겐 계속 거짓말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이 닥쳐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루머나 유언비어가 확산된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진짜 정보를 찾아 헤맬 것이다. 이렇게 정보에 대한 수요는 높은데 공급은 딸리니 불량정보들, 예전이라면 우습게 넘겼을 헛소문도 진지하게 소비된다. 물론 그 중에서 뭐가 진짜인지를 아는 사람은 여전히 극소수일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는 정부를 비난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그 정부로부터 진짜정보를 받는 극소수 집단에 들어가거나 최소한 그들과 연줄이라도 연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결국 정보의 비대칭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정부가 거짓말을 해도, 심지어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정부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유지되는 정부가 정상일리는 없고,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국가가 제대로 된 발전을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이를 바다 건너 나라의 안타까운 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자. 인터넷을 통해서 온갖 루머가 확산된다. 최진실이라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연예인의 죽음에도 그 인터넷 루머가 한몫을 했다. 왜 사람들이 인터넷 루머를 소비할까? 역시 정보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류언론의 신뢰도가 낮아졌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뢰를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일관성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언론들이 말을 바꿨다.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사람들이 주류언론을 믿을 수 없게 되면 결국 그 자리를 인터넷이, 루머가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모쪼록 바라는 것은, 인터넷 게시판을 기웃거리고 TV를 시청하는 것을 취재로 착각하지 말고, 자신의 눈과 머리로 진짜 취재를 하고 모두가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최소한 미얀마보다 낫다고 말하려면 그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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