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한참 전에 할 일을 마치리라’는 결심과는 달리 매일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바쁜 나에게 휴일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는 기대로 시작되지만 실은 매번 비슷한 활동으로 채워지곤 했다. 이번 연휴에도 의무로만 채워지면 후회할 것 같다는 조바심에, 그리고 베풀 듯 사람들 끄는 할인에 알고도 속아 큰 맘 먹고 뮤지컬이라는 비싼 효도를 계획했다. 작년이나 다를 바 없는 계획이지만 올해엔 작은 망설임이 있었는데, 작년부터 어두운 공연장에서 생긴 핸드폰 공포증 때문이었다. 이게 운인지 아님 확률 상 당연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작년엔 약 5편의 영화관람이 쉴 새 없이 보내고 받고 심지어 통화까지 서슴지  않는 ‘핸드폰광’들로 인해 심하게 방해받았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보내고 받고 심지어 통화까지 서슴지 않았다. 파브로브의 개가 종만 울려도 침을 흘리는 것을 학습했던 것처럼, 어두운 문화 공간이 불쾌한 장소로만 인식되는 것이 싫어, 참아도 보고 저항도 해보고 일러도 봤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가 않아 좌절 중이었다. 말하자면 긍정심리학을 부르짖는 샐리그만을 그 오래 전에 유명하게 만든 “학습된 무기력”증으로 고생 중인 셈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공연에선 그 많은 ‘핸드폰 광’들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공연 보는데 투자를 더 많이 해서일까? 공연에 앞서 엄숙한 목소리의 여자가 핸드폰을 끄라고 했기 때문일까? DVD 재생이 불가능한 공연이라 그랬을까? 뮤지컬파와 극장파는 다른 사람들인가? 영화관에선 그 짧은 두 시간 내에 본전생각 안 나게 만드는 꼭 답하고 해결해야 할 큰 일이 도대체 왜 공연장에서는 없는 걸까? 이 질문들의 답을 알면 암순응에 겨우 안정된 내 눈이 현란하게 밝은 불빛으로 다시 고생하는 일이 없어 질 것 같지만 지금은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복잡한 인간의 행동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일 이론은 있을 수 없다는 이제까지의 배움은 ‘모두가 다 원인이다’라고 결론짓게 하는데 그 답은 언제나 그렇듯이 뭔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문득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심리적인 해석을 원하며 전화를 걸어오는 기자들에게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 해 줄 말이 없다고 응답했던 일이 생각난다. 사람의 행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살면서 겪는 수많은 궁금증에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 좌절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100년 정도 되는 역사에 파브로브도 있고 셀리그만도 있으니 제 3의 인물이 연구를 통해서 이제까지보다 인간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게 만들어 줄 것임을 굳게 믿는다. 뇌에 대해 아는 것도 제한돼 있는데, 그런 뇌 작용을 통해 행동이 어찌 나오는지에 대한 지식이 적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위로를 해본다. 어쨌든 인간은 복잡하고 밝힐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저 제 3의 인물을 나오는데 내가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남는다. 그리고 조건학습된 부정적 경험을 없애려면 긍정적인 재학습이 최고라는 또 하나의 심리학적 지식에 따라 또 다른 공연장에서의 좋은 경험을 가져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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