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간신문에 주목할 만한 기사가 실렸다. 서울대총장이 나서서 광혜원과 법관양성소를 서울대학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학교 역사 개정 작업을 서울대동창회에 의뢰했다는 것이다. 서울의대는 약 30년 전부터 광혜원이 국립기관으로 시작한 것이므로 자신들의 뿌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위 이 ‘뿌리 논쟁’은 이제는 단과대학 차원이 아니라 대학 전체의 역사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광혜원은 연세대학의 기원으로 1894년 미북 장로교 선교부로 완전히 이관된 사립기관이다.
서울대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논리는 협애함을 넘어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한국 국립대학의 기원을 19세기 말에 세워진 광혜원과 법관양성소에서 찾겠다는 것은 사실적 연결 관계의 문제를 떠나 광혜원과 법관양성소 설립 이전에 국가에서 설립한 고등교육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성균관, 고려의 국자감, 고구려의 태학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은 아마 ‘근대학문’을 가르친 고등교육기관에 대학의 기원을 한정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대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기관만을 대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대학에 대한 지극히 편협한 인식일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중세에 설립된 옥스퍼드나 파리대학은 중세 동안 당연히 근대학문을 가르치지 않았다. 중세대학의 의학부는 지금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도 되지 않는 이론과 치료법을 가르쳤지만 중세의 의과대학이 근대의학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학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대학이란 당대를 포함해 인류가 축적해온 가장 고급지식을 전수하고 연구하는 고등교육기관을 지칭하는 말이지 ‘근대’라는 특정 시기의 지식만을 가르치는 기관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근대학문’을 가르치는 기관만을 대학이라고 규정하다면 천년 후의 사람들이 그들의 ‘근대학문’을 가르치지 않았던 오늘날의 대학은 대학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따라서 성균관이나 국자감을 우리 국립대학의 기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수준 높았던 전통학문과 고등교육의 전통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지극히 비역사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광혜원과 서울대학을 연결시키고자 시도할 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일제가 설립한 고등교육기관, 즉 경성제대와 서울대학의 관계설정 문제이다. 지금까지 서울대학은 공식적으로 광복 이후인 1946년을 서울대학의 개교시점으로 잡아 왔으므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러나 광혜원과 서울대학을 연결시키려는 순간부터 경성제대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떠안아야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그런데 서울대학의 설립주체가 대한민국정부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서울대학의 이러한 기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정부는 조선총독부와는 무관한 통치체제이다. 물론 총독부 건물을 정부청사로 사용했던 물리적 연속성, 그리고 총독부의 조선인 관료들이 대한민국정부의 관료로 일했던 인적 연속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정부를 조선총독부와 연속된 존재로 보거나 대한민국정부의 전신이 조선총독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물리적 연속성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사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울대학의 설립주체인 대한민국정부는 조선총독부와 관계를 끊고 있는데 정작 서울대학은 다시 자신을 식민지권력기구와 연결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혹 서울대학은 국립서울대학의 ‘국(國)’을 ‘대한민국’의 ‘국’이 아니라 조선총독부를 포함해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통치주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그 ‘국’에 성균관과 국자감을 세운 조선과 고려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일까? 근대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왠지 식민지근대화론의 망령이 여기서도 떠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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