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필름스케치 국제 대학생 영화제 열려

한국 영화계가 실력있는 청년감독들에게 ‘러브 콜’을 해왔다. 지난 11일부터 13일, 여름의 푸르름이 짙어져가는 남이섬에서 펼쳐진 ‘2008 필름스케치 국제 대학생 영화제(아래 필름스케치 영화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영화제는 ‘빛의 외침(Shout of Light)’이라는 슬로건 아래 작지만 실속 있는 행사로 그 존재를 공고히 했다.

남이섬에 찾아온 영화계의 청년들

필름스케치 영화제는 신생 영화제인데다가 영화계의 유망주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각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대학생을 겨눈 ‘대학생영화제’는 딱히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기성 영화제는 이미 업계에서 자신의 세계를 어느 정도 확립한 감독들을 주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새내기 감독들이 나설 자리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름스케치 영화제는 영화산업에 뜻을 둔 청년 감독들에게 거의 유일한 기회와 평가를 제공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행사는 국내경쟁부문과 해외초청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국내경쟁부문은 총 18개 학교의 62개 작품 중 19개 작품을 선정했다. 또 해외 10여개국 20개 학교의 작품 중 선정한 6개국 12개 작품이 소개됐다. 본선 심사는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맡았다.
대학생 감독들의 작품들은 개막식 때 소개된 예고편만으로도 관객들의 기대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대다수가 영화 관련학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대학생들이어서 기술적인 완성도면에 있어서는 이들의 실력차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영화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각자의 개성이 또렷했다.

자발적인 배려와 강제적 배려 사이에서 오는 상처를 그린 최호성 감독의 「배려와 상처」는 불과 4분 40초만에 모든 이야기가 끝난다. 류주희 감독의「청춘아담」은 학교가에 출몰해 자신의 나체를 보이며 희열을 얻는 일명 아담(혹은 바바리맨)의 인간적인 모습과 삶의 고뇌를 담았다. 서재경 감독의 「너의 세계」는 육상 선수로서의 삶에 취해 수술실에 누워있는데도 머릿속으로는 바다에 빠질 때까지 뛸 수 밖에 없는 한 소녀를 통해 인생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한 청년이 외할머니 댁에 전구를 갈러갔다가 겪는 해프닝을 통해 일상의 재발견을 보여주는 「외할머니와 레슬링」은 출현한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코믹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해외 단편 중에서 뮤지컬 영화로 제작돼 음악과 장면을 감각적으로 매치한 시라카와 코지 감독의 「마치코 양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가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출품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학생다운 감성이 드러난 독특한 것들로 가득했다.

한국 영화계의 다음 세대를 꿈꾸며

필름스케치 영화제는 비단 경쟁과 상영뿐 아니라 영화계의 후학 양성에도 치중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대학생 감독들은 자신들이 걸어갈 길에 대한 사전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제 기간 동안 대학생 감독들과 현직 감독이 함께 참여하는 두 번의 세미나가 있었다. 이종훈, 김기훈 감독이 함께한 두번의 세미나는 각각 ‘새로운 기기를 활용한 영화 제작’과 ‘해외 영화제 출품의 의미’를 다뤘다. 이번 영화제를 영화를 평가하는 자리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인재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시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에 「외할머니와 레슬링」의 임형섭 감독은 “기존 영화제들과는 달리 대학생 감독들을 위한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영화제 기간 동안 심사위원단은 의례적으로 출품한 대학생 감독들과 합숙하며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성균관대 영상학과에 재학중인 서재경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느끼는 실제적인 고민들과 문제점에 대해 나눌 수 있었다”며 “심사위원이라는 또 다른 ‘관객’의 입장에서 작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폐막식 날 무대에 선 오광록씨와 박리디아씨는 ‘필름스케치 영화제’가 그 이름을 영화계에 튼튼히 했으면 하는 기대와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는 필름스케치 영화제를 위해 땀 흘린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대상 수상작인 「너의 세계」의 서재경 감독은 “영화제에서의 첫 수상이라 정말 기쁘고 크게 격려가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감독의 작품은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단편 걸작선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꿈을 현실의 가교로

영화가 대중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제작자가 되어 수많은 관객들과 소통하기를 꿈꾼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대중문화산업의 중심으로 도약했다. 그와 함께 영화 제작 관련학과나 기관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 내고 줄거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 관객과 대면할 수 있는 창구다. 신인 감독들의 상영 기회와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갓 날개를 펴고 날고자하는 학생 감독들은 활공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필름스케치 영화제는 그들이 날 수 있는 하늘을 마련해 주었다. 이번 행사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안상혁(성균관대학교·영상학과교수)씨는 “기존의 영화제들은 아무래도 이름이 알려진 감독들 중심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고 반응에 치중하기에 자유로움이 부족하다”며 “필름스케치 영화제가 자유롭게 청년 감독들이 열정을 표출하는 공간으로 이어지고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3일간 대학생 감독들의 오롯한 꿈의 터로서 함께한 필름스케치 국제 대학생 영화제. 앞으로 대학생 감독들과 함께 성장하고 지속돼 그들의 열정을 현실로 이어주는 통로가 되길 기원한다.

필름스케치 국제 대학생 영화제의 대학생 자원봉사자 커플이 환하게 웃고 있다. 영화제는 그 이름답게 '대학생 판'이었다.

글 김규진 기자 loveme@

사진 김지영 기자 euph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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