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그것이 알고싶다

 영화 『광복절특사』의 주인공 최무석은 배가 고파 시장에서 빵을 훔친 것 때문에 감옥에 간다. 배는 고프지만 돈이 없어서, 그것도 빵 하나를 훔쳤을 뿐인데 감옥에 들어온 그는 억울함에 탈옥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최무석이 도둑질이란 죄를 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 들어갈 만큼 무거운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대답하기 힘들다. 최무석은 영화 속 인물이기에 다소 과장된 점이 있지만, 현실에도 그와 비슷한 이유로 감옥에 들어 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런 이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일반 국민들이 이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민참여재판’이 바로 그것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

 우리나라의 재판은 법관 중심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에 일반 국민은 재판을 관람할 수는 있지만 참여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사법부는 국민에게 열려있지 않은 폐쇄적인 영역으로 인식됐고, 따라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지지 않았다. 한편 학계나 시민단체는 국민에게도 사법참여의 길이 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국민의 사법 참여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쳐 왔다. 마침내 지난 2007년 4월 30일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의를 통과해 올해 1월 1일부터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됐다. 대법원 조사심의관 홍진호 판사는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에게 재판을 공개해 국민이 이에 직접 참여하는 제도”라며 “이는 재판 절차, 내용, 결론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더 나아가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참여재판의 법정에는 기존 재판에는 없었던 배심원석이 마련된다.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원을 향해 사건의 쟁점을 설명하고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검사와 변호사의 법정공방이 끝난 뒤가 배심원들의 역할이 빛나는 때다. 배심원들은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을 고려하며 법정에 나온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평의’라 불리는 논의를 거친다. 이런 평의를 통해 확정된 배심원의 판단 결과는 ‘평결’이라 불린다. 

배심제,  참심제 그리고 국민참여재판

우리의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제와 참심제 두 제도를 적절히 혼합하고 수정한 제도다. 배심제는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시행되는 제도다. 이 제도에서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재판에 참여해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하는 평결을 내리고, 법관은 이 결정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피고인에게 내리는 형벌 정도는 오직 법관이 판단하고 결정한다. 반면 참심제는 독일, 프랑스 등에서 주로 채택하는 제도다. 일반국민으로 구성된 참심원은 법관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법관과 함께 사건에 대한 사실문제와 법률문제를 판단한다. 배심제와 참심제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심원은 법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평결을 내리지만, 참심원은 법관과 함께 재판부를 구성해 평결을 한다.
그렇다면 국민참여재판은 이 두 제도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사건에 한하여 피고인이 원할 경우에 시행된다.  몸이 불편한 경우와 같이 법정에 출석할 수 없는 몇 가지 결격사유와 면제사유를 제외하고는 만 20세 이상의 국민은 누구나 배심원이 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은 원칙적으로 법관으로부터 독립해 평의를 진행하고 만장일치로 평결에 이르러야 한다.

 만약 만장일치로 평결에 이르지 못하면 배심원들은 법관의 설명이나 의견을 들은 후 다수결로 평결 할 수 있다. 유·무죄에 대한 평결 뒤에 배심원은 법관과 함께 형벌 정도를 토의한다. 하지만 배심원은 형벌 정도에 관한 의견만을 제시할 수 있을 뿐 이를 결정할 수는 없다. 배심원의 평결은 단지 권고적 효력만을 갖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참여가 기본적으로 우선돼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지만 사법에 관해서는 국민이 참여할 기회도 적었고 따라서 국민의 의견이 이에 반영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재판 과정에 법관의 의견만이 아닌 배심원, 즉 일반 국민의 의견도 반영할 수 있게 됐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제도에까지 국민의 참여를 넓힘으로써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건전한 법감정의 반영

 처음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될 당시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배심원으로 출석한 사람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일당 등 재정적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을 무리 없이 시행하기에는 현실적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이 공정한 평결을 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피고인의 불우한 성장배경 등을 내세워 배심원의 감성을 자극한 감정재판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국민참여재판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이 제도에 긍정적인 의견을 비치고 있다.

 지난 5월 19일 수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수원지방법원 김상근 참여사무관은 “배심원들이 감정에 치우친 판단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배심원의 평결은 권고 효과만을 지니고 재판부에서 법적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때문에 배심원의 평결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한상훈 교수(법과대·형법)는 “평결에 감정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지만 “국민참여재판이 국민의 건전한 법감정을 반영하는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고 평했다.

국민참여재판, ‘백문이불여일견’

 국민참여재판은 아직 시범단계에 놓여있다. 이 제도가 무사히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국민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서울과 수원, 인천 지역 일반 시민의 국민참여재판 동행 관람을 진행하고 있는 참여연대 박근용 사법감시팀장은 “배심원 출석률은 기대 이상으로 높은데 반해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는 일반 시민의 수는 매우 적다”며 “일반 시민들도 이 재판을 직접 보면 재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배심원이 됐을 때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서울에서 두 번째로 국민참여재판을 연다. 재판 관람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려있다. 직접 가서 보고 오는 것이야말로 국민참여재판이 발전하고 정착하는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박영일 기자 pyi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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