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깨갱깽-” 꽹과리의 함성이 터지면 깃발, 악기, 사람 할 것 없이 일제히 더덩실 어깨춤을 춘다. 해가 쨍하게 비치는 대강당 앞에서 출발한 무리는 백양로 공연장 앞을 지나 백주년 기념관에 들렀다가 마침내 중앙도서관 앞에서 둥그런 원을 만들며 멈춰 섰다. 하늘로 솟구칠 듯한 빨간 깃발을 가운데 두고 꽹과리가 여기저기에 눈짓을 한 뒤 ‘씨익’ 한번 웃는다. 다시, 신명이 시작됐다.

지난 2007년 대동제, 기간 내내 내렸던 짓궂은 비는 왁자지껄한 축제의 소란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온몸을 적시고도 그 태하나 변함없이 백양로를 활보하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대학교 중앙동아리 풍물패 ‘떼’(아래 풍물패 떼)다. 물먹은 악기들은 신기하게도 더욱더 귀가 먹먹하도록 소리를 질렀고 캠퍼스의 축제 분위기를 다시 깨웠다.

풍물패 ‘떼’는 풍물을 ‘배우고 연주하고 전하는’ 동아리다. 이들은 여름방학에 전라도 고창으로 한 주가량 악기 연수를 떠난다. 연수 기간 동안 각 악기의 전문적인 고수들에게서 배움을 얻고 치열하게 우리 고유의 정서를 익힌다. 또 방학이건 학기 중이건 상관없이 무악극장에서 장구, 소고, 징, 꽹과리, 북을 두드린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섬세한 차이를 가진 몇 종류의 박자를 조합해 가장 경쾌한 한 마당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 노력이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져 우리 전통의 흥과 풍물패 ‘떼’의 독창적인 개성이 계속해서 전해지게 된다.

 풍물은 무대에서 관객에게 수동적으로 ‘들어주기만을 강요하는’ 음악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나는 음악이다. 대동제 공연 때도 엄마 따라 마실나온 꼬마아이부터 옆 학교 축제가 궁금했던 중고등 학생들까지 풍물패 와 하나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연진(인문·08)씨는 “대열의 맨 뒤에서 풍물패와 같은 춤을 추며 따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참여를 통해 함께하는 즐거움까지 누리도록 해주는 풍물은 단지 음악이 아닌 듣고 연주하는 사람 모두의 ‘놀이’인 것이다. 풍물패 떼의 회장인 박송이(간호·06)씨는 “2주동안 대동제를 준비하며 힘들었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니 ‘풍물의 근원은 사람’이라는 말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풍물패 ‘떼’의 연습시간은 합주중심으로 진행된다. 일단 합주가 시작되면 휴식시간은 따로 허락되지 않는다. 단원들이 앉아 쉴 만 하면 꽹과리가 ‘깽-’, 또 다시 앉을 만 하면 ‘깽-’하며 연습을 지속한다. 풍물패는 멜로디가 없는 타악기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자칫 중심이 흐트러지면 산만하게 울리는 소리로 전락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연습 역시 공연이다. 이세희(건축도시공학부·08)씨는 “연습이 끝나고 집에가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다”며 “하지만 단원 모두가 함께 힘들어하며 연습했기 때문에 버텨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대동제에서 만난 그들은 준비기간 동안 운동장을 꽝꽝 울리고 신촌과 연희동 일대를 들썩이게 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박자의 세기에 따라 숨이 가빠지다가 후욱 하고 내뱉는 날숨 소리, 장난끼 가득한 표정들과 자유롭지만 절도있는 박자까지. 꽹과리가 다른 악기들에게 다가가 열심히 제 소리를 자랑하면, 따라나와 질 수 없다는 듯 목청을 돋우는 여러 악기들도 그때와 다름없다. 지나가던 사람도 꽹과리가 불러내면 원 중심으로 나와 춤을 춰야 한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꾸며진 단원들의 꽃고깔과 앞선 꽹과리들의 상모에 달린 커다란 꽃들은 풍물패가 멈춰 서는 곳이면 어디서나 피어났다. 그리고 마치 물결이 일렁거리는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풍물패가 지나가는 곳곳엔 ‘Groove*’가 아닌 ‘흥’, 우리 고유의 신명이 꽃가루처럼 날렸다.

 몇 시간 동안 잠깐씩의 휴식을 가지며 계속된 풍물패 ‘떼’의 공연은 ‘잔치 중의 잔치’였다. 학점과 과제, 취업 이야기로 사실 속은 꽉 막힌 캠퍼스를 뻥 뚫어준 풍물패 ‘떼’의 붉은 깃발, 젊음과 땀의 흔적. 축제는 끝났지만 아직 백양로에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글 김규진 기자 loveme@
사진 김가람 기자 super100@

쪻Groove:재즈에서 주로 쓰이는 표현으로   ‘가락이 맞는, 또는 흥이난의 뜻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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