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공예 장인 장웅렬씨가 종이뜨기 작업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원주는 대규모 닥나무 군락지 덕분에 한지의 본고장으로 인식돼왔다. 아침 9시, 원주시 우산동 ‘원주한지’ 공장에서는 오늘도 한지공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닥나무를 베고, 삶고, 세척하고, 표백하고, 잡티 고르고….’ 아흔아홉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백번째로 만진다해 ‘백(百)지’로 불리는 한지. 대부분의 한지가 기계로 만들어지는 요즘이지만 장인 장응렬(53)씨 부부는 3대째 수공업 방식으로 질 좋은 전통한지를 제작하고 있다.

 공장마당 한켠에는 봄햇살을 받은 닥나무들이 놓여있었다. 보드라운 한지가 나오기까지는 이 닥나무가 큰 역할을 한다. 껍질을 벗기고 큰 찜통에 3시간정도 삶으면 꼿꼿했던 닥나무는 국수가락처럼 풀어진다. 삶은 닥은 다음과정을 위해  하루 동안 쌓아둔다. 장씨는 예천, 영주, 안동, 청평에서 수급한 우리나라 닥나무를 고집한다. 태국과 중국과 같은 더운나라의 닥나무는 가격은 싸지만 닥 섬유가 가늘고 짧아 질기지 못하다고 한다. 다음날에는 보드라워진 갈색의 닥을 세척과 표백으로 하얗게 만든다. 표백과정을 거쳐 다시 하루가 지나면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잡티제거과정이 진행된다. 하루에 한 사람이 티를 골라내는 양이 약 서너근 정도라 한다. 자동화 시스템에 익숙해진 현대 사람들이 이 과정을 보게 된다면 꽤나 답답해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닥을 잘게 분쇄하는 기계인 ‘비터’로 옮겨진다. 분쇄된 닥은 초지통에 물, 닥풀과 함께 뒤섞여 종이뜨기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도 장인의 노련한 기술이 묻어난다. 장인은 종이 한 장에 한번씩 대발과 발틀로 닥 섬유를 건져낸다. 물을 빼는 압착과정을 거친 습지는 약 12시간 이내에 염색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 후 2~3분 동안 철판 건조를 거친 후 한지가 드디어 완성된다. 한지 하나를 만드는데 7~8일이 걸리는 셈이다.
닥나무를 수급해서 처음부터 수작업으로 한지를 만드는 것은 기계로 만드는 한지보다 손이 많이 가고 몇 배나 더 힘들다. 인력도 두배 이상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원주한지의 가격은 시장단가를 맞추기도 버겁다. 그래도 장씨 부부는 전통한지를 만드는 원칙을 고수하며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돌아 간다. 원주한지만의 특색을 지키고 다른 지방이나 수입한지와 차별화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씨와 같이 20년 동안 한지를 만든 부인 김남은씨는 물질적 가치만 추구하는 최근 젊은이들의 모습을 걱정 한다. 김씨는 “힘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젊은 인력이 필요한데 요즘 사람들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급여부터 물어봐요”라고 말한다. 장씨는 업체들이 시장단가로 인해 싼 가격에 많은 양을 제조할 수 있는 수입원료를 사용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수입원료의 사용은 한지의 질적 저하로 이어져 한지의 전통을 퇴색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원주한지는 전통한지의 자부심을 지켜간다. 느리게 제작된 전통한지는 우리 삶 여러 곳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김씨는 “요즘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전통한지로 벽지를 발라 생활하니 아이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벽지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전통한지를 보며 장씨 역시 “결코 한지가 우리 생활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닥나무로 시작한 닥은 장인들의 한손한손 손맛에 걸쳐 한지로 재탄생된다. 오랜시간 장인들의 인내심을 통해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에서 한지는 색색깔 고운 내음을 풍기며 퍼져나가고 있다.
 

글 안형선 기자 fairy576@
사진 임유진 기자 smile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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