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 간판과 외국어 간판이 공존하고 있는 국경없는 마을의 상점가의 모습
 

얼핏 본 원곡동의 아침은 우리의 여느 동네와 다를 것이 없다. 어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일하러 나간 원곡동은 지난밤의 혼잡함을 벗어던지고 아직까지 잠기운이 남아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게 되면 금방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아침 장사를 시작하는 상점들은 한국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간판을 내걸고 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장사를 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손짓, 발짓을 사용해 거래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곳, 그곳이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이다.

 국경 없는 마을은 하나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들은 지역사회 내에서 국적, 언어, 피부색, 종교, 경제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체적으로 더불어 살기’를 지향하고 있다.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안산이주민센터(아래 이주민센터)는 일반적인 지역 노동 상담소로 시작해 당시 어려운 상황에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이주민센터로 개편됐다. 이후 국제결혼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제결혼 커플들의 시민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 속에서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없애고 그들의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국경 없는 마을 운동은 시작됐다. 이주민센터의 류성환 사무처장은 “외국인만의 마을인 차이나타운과 달리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점에서 원곡동은 몇 안 되는 다문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의의를 설명했다.

현재 원곡동 주변에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2:3 정도의 비율로 살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는 외국인들이 더 많 기 때문에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류 처장은 “원곡동의 외국인 주민들이 원곡동을 구경하러 온 외부 한국인들을 역으로 사진 찍는 문화 활동을 하기도 한다”며 “외국인이 더 이상 사진을 찍히는 피사체가 아니라 한국인과 동등한 존재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주민센터와 관련 단체인 ‘(사)국경없는마을’ 주최로 외국인들에 대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살면서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마을을 이끌어가고 있다. 아침 10시쯤 원곡동의 ‘국경 없는 거리’에 위치한 공원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매주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자원봉사라는 띠를 두르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 마을 청소를 하는 것이다. 자원봉사는 한국인들과 외국인들, 한국 동포들이 함께 하고 있다. 올해로 원곡동에 온지 8년째가 되는 중국 동포인 고재근(74)씨는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을이 깨끗해지면 좋다”고 말했다. 실제적으로 외국인과 마찬가지인 고씨의 표정에는 한국인 주민들과의 불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원곡동이 초기부터 다문화 공동체의 모범이 된 것은 아니다. 이주민센터의 노력과 원곡동에 사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주민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원곡동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주민센터의 류 처장은 “이주민들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한 이주민센터에 들어오는 상담수가 과거에 비해 급감한 것은 차별이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원 단체들의 노력과 외국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원곡동의 어두운 면을 걱정한다. 특히 저녁에는 각국의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사소한 시비나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쌀국수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베트남인 전지현(38)씨는 “저녁이 되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아시아인들이 존재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세계 각국의 음식을 파는 상점에서 일하는 한국인 호슬기씨 역시 “4년간 여기에서 일하면서 단순한 시비로 인해 일어나는 싸움들을 종종 목격했다”며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원곡동 역시 주로 저녁에 발생하는 각종 범죄들을 문제점으로 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원곡동에는 각종 범죄문제와 여전히 존재하는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혐오적, 동정적 시선이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내일도 원곡동은 오늘처럼 아침을 맞이하고, 또 그 다음날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여느 동네와 비슷해보이지만  특이한 점을 가진 원곡동은 한국에 다문화 공동체의 흐름을 전파하기 위해 오늘도 한계를 넘고 있다.       

  글·사진 최명헌 기자 future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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