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위원회가 말하는 미래

최근 ‘과거사 정리’가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고 이야기하는 측과, “화합과 상생을 위해 과거사 정리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중이다. 이에 따라 여러 분야에 걸친 과거사 정리 위원회들 역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 민족 민주열사를 추모하는 겸허한 자리 자료사진 유가협

현재 정부 차원에서, 혹은 자립적으로 여러 과거사 관련 단체들이 존재한다. 이 중 대표적인 단체는 정부가 설립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5년 12월 1일에 설립돼 올해로 2년 넘게 과거사 규명에 힘쓰고 있다.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보상 △해외동포들에 대한 지원, 논쟁 정리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테러,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의 조사가 이들의 업무다. 이명곤 정책홍보팀장은 “한국 사회의 극심한 좌우 대립과 동서 대립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과거사 정리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과거사 정리는 국가적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상생과 화해다. 단순한 과거사 규명이 과거에만 얽매일 수 있기 때문에 진실화해위원회는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 및 유족의 용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팀장은 6.25 전쟁 당시 일어났던 사례를 들려준다. 이념차이로 갈등했던 한 마을의 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후 서로의 추모비를 세워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려 했단다. 비록 얼마 없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상생과 화해의 진정한 모델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사 정리 활동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과거사 정리에 필요한 자료 확보 문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처리한 1천여건의 사안 중 12건의 처리 불능 사건 역시 자료 확보의 문제가 가장 컸다. 이 팀장은 “과거에 발생된 사건을 기록한 공문서들이 대부분 폐기됐고, 기록문화에 취약한 한국 상황에서 진실 규명을 위한 자료 확보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통폐합론에 휩싸인 과거사 위원회

▲ 의문사를 당한 사람들의 유골을 발굴하고 잇는 진실화해위원회 자료사진 진실화해위원회

이 외에도 일제치하 친일행위, 민주화, 군 의문사 등 많은 분야에서 정부차원의 위원회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과거사 정리를 위한 위원회들이 통폐합될 조짐을 보인다. 지난 2월 인수위의 계획에서부터 시작된 통폐합론은 4월 16일 행정안전부의 결정에 의해 구체화됐다. 행정안전부는 81개 위원회 중 60개를 폐지하는 ‘위원회 정비방안’을 확정 발표했고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등 5개 과거사 위원회 통폐합역시 언급했다. 이어 지난 4월 29일 감사원에서는 과거사 관련 13개 위원회 중 일부 위원회의 설치 목적과 기능이 중복된다며 이를 정비할 것을 행정안전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아래 유가협)’와 ‘과거사위원회존속을위한국민연대(아래 국민연대)’ 등의 단체들이 통폐합 입장에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나섰다. 유가협에서는 통폐합에 대한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폐지법안을 상정하기 위한 농성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각 정당들의 대표를 만나 그들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유가협의 박제민 간사는 “과거사 위원회들을 통합한다는 것은 결국 과거사 정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사원의 이번 발표에 대해서도 박 간사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은 특별법으로 제정됐는데, 그것은 감사원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의 활동이 중복됐다고 발표했지만, 중복된 활동이 10개라면 중복되지 않은 활동은 만여건에 이른다”며 “이를 가지고 예산낭비라고 하는 것은 침소봉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외에도 국민연대가 통폐합 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족반역자처단협회,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 독립유공애국지사유족회 등이 함께하고 있는 국민연대는 통폐합을 반대하는 집회와 서명활동을 하고 있다. 국민연대 집행위원인 이규진씨는 “과거사 한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대, 이를 통합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과거사 정리

그러나 통폐합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이 팀장은 “국민 대다수가 과거사 정리에 대해 인식만 할 뿐이다”며 안타까워했다. 과거사 정리의 존폐여부는 국민적 관심에 달려있다. 이 팀장은 “과거사 정리 관련 단체들이 얼마 남지 않은 임기동안 최대한 많은 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김동춘 상임위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국민들의 직접적인 활동을 요구한다. 정부차원의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상임위원은 시민사회 활동과 관련해 특히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제시한다. 그는 “대학생들은 과거사 정리가 사회 전반적인 여론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학생들 역시 역사의 굴레 속에서 미래의 피해자,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과거의 잘못된 사안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 속에는 항상 진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진실에서 ‘정의’를 찾아야 한다는 이 팀장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최명헌 기자 future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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